서울 H사립대 경제학과 3학년 김모씨는 이번 겨울방학에 아르바이트를 두 개 뛰고 있다. 매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고, 일주일에 이틀은 낮시간에 과외를 한다. 다음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려면 방학 내내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이렇게 버는 돈은 월 90만원. 지난 학기에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까지 다 보태야 겨우 한 학기 등록금(350만원)을 마련할 수 있다.

부모님이 일정한 수입이 없어 형편은 어렵지만, 주택을 보유하고 있어 김씨는 정부와 학교가 저소득층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학자금 대출은 나중에 엄청난 빚이 될까 두려워 포기했다.

작년에는 아르바이트가 너무 힘들어 학교가 성적 우수자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으려 해봤다. 1학기에 아르바이트를 과외 1개로 줄이고 학점을 4.1점(4.5만점)으로 끌어올렸지만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공부에만 매진해 만점 가까이 받는 친구들을 갑자기 따라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2학기 땐 다시 일주일에 나흘씩 하루 7시간 동안 트럭 배달을 했고, 학점은 다시 3점 초반대로 떨어졌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고, 그 결과 성적이 우수하지 않으니 장학금을 받지 못하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외부 장학금도 수소문해 봤지만 보통 학점 3.5 이상에다 교수 추천서를 요구했어요. 아르바이트 뛰느라 피곤해 학점도 안 좋고 수업 시간엔 졸기 일쑤인데, 어느 교수님이 추천서를 써주겠어요?"

◆"장학금은 우수학생 유치용"

등록금 '1000만원 시대', 가난한 학생들이 학비 부담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작 대학 장학금은 경제적으로 힘든 학생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치우치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학생들을 도우려는 목적보다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장학금이 더 많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본지가 전국 4년제 일반대학 171곳의 2008년 장학금 지급내역을 분석한 결과, 장학금 총액 1조9459억원(내부+외부장학금) 중 가계 곤란 장학금(2997억원) 비중은 15%로, 성적 우수 장학금(7411억원) 38%의 절반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학생회 간부·보훈자 자녀에게 주는 장학금이거나 근로 장학금이었다.

예컨대 숙명여대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이 전체의 4.1%(4억8808만원)에 그친 반면,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은 그 18배에 해당되는 70.5%(82억8760만원)에 달했다.

동국대는 성적우수 장학금이 37.0%(91억1598만원)로, 가정형편 장학금 5.1%(12억6203만원)의 7배가 넘었고, 한양대는 이 배율이 3.5배(71.0%·241억1594만원/20.8%·70억5219만원)였다. 심지어 국립 서울대도 가정형편 장학금(41.3%)이 성적우수 장학금(48.5%)보다 적었다.

그 결과,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학생들의 어려움은 커지고 있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 다니는 강모(22·영어영문 3년)씨는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에게 주는 교내 면학장학금을 받고 있지만 다음 학기에 장학금이 얼마 나올지 몰라 불안해 지금 과외를 5군데 뛰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금의 역설(逆說)'

대학들은 한정된 예산으로 우수 학생을 많이 선발하기 위해 성적 우수자 장학금 비중을 확대할 수밖에 없고 항변한다. 대부분 대학은 '수능성적 우수자 10명 4년 등록금 전액 면제' 같은 파격적인 장학금 혜택을 내걸며 우수 신입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결국 대학의 장학금 정책이 학생 복지보다 우수 인재 선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한국교육개발원 이정미 박사).

그러나 그 결과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장학금이 필요없는 대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이 몰리는 '장학금의 역설'이 빚어지고 있다. 건국대 교육학과 오성삼 교수는 "요즘엔 집안 형편이 좋아 사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이 학업성취도도 더 높은데 공부 잘한다고 장학금을 주는 것은 이중(二重) 혜택"이라며 "미국 등 선진국에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비를 감면해주지, 공부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장학금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미국 뉴저지주립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현재 박사과정 중인 김동근(26)씨는 "미국 대학은 가정 형편에 따라 전액 감면, 절반 감면 등으로 등록금 자체가 다르게 책정되는 곳이 많다"며 "또 외부 장학금 제도가 워낙 다양해 본인이 원하면 장학금을 따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송기창 교수(교육학)는 "한국은 기부자 중에서도 '성적 좋은 학생을 위해 기부금을 써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장학금 제도의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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