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동계올림픽은 거의 모든 종목의 선수가 장갑을 낀다. 보온(保溫)과 부상을 막아주는 안전장비로서의 기능이 우선이지만, 장갑이 경기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종목도 있다. 쇼트트랙 선수들은 왜 오른손과 왼손에 다른 모양의 장갑을 착용할까. 봅슬레이에서 왜 어떤 선수는 장갑을 끼고 어떤 선수는 끼지 않을까. '장갑의 비밀'을 알면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왼손에 '개구리 장갑' 끼는 쇼트트랙
쇼트트랙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코너를 돌 때 왼손으로 얼음을 짚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날렵하게 코너를 돌기 위해 몸을 최대한 트랙 안쪽으로 기울이면서도, 넘어지지 않게 손으로 중심을 잡는 것이다. 항상 시계 반대방향으로 레이스를 펼치기 때문에 왼손만 쓰고 오른손은 얼음에 닿을 때가 없다. 이 때문에 쇼트트랙은 왼손과 오른손 장갑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선수들은 왼손에 손가락 끝이 둥글게 돌출된, 개구리 발처럼 생긴 장갑을 낀다.
과거엔 왼쪽 장갑만 쉽게 닳는 것을 막으려고 손가락 끝에 면 테이프를 감아 사용했다. 그러나 면 테이프는 얼음 위를 매끄럽게 미끄러지지 않아 경기에 방해될 때가 있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에폭시 수지'라는 이름의 합성수지를 붙인 장갑이 등장했다. 방수와 접착 용도로 많이 쓰이는 에폭시 수지는 단단하면서도 표면이 매끄러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쇼트트랙 대표팀 김기백 트레이너는 "일반 골프 장갑에 직접 에폭시를 바르거나, 골무처럼 만들어진 둥근 팁(tip)을 사서 접착제로 붙이는 선수도 있다"고 말했다.
■루지 선수 손가락 끝은 뾰족뾰족
썰매 종목인 루지 선수들은 '바늘 장갑'을 낀다. 말 그대로 손가락 끝에 4㎜ 정도 길이의 뾰족한 스파이크가 달린 장갑이다. 힘차게 달리다가 썰매에 올라타는 스켈레톤·봅슬레이와 달리 루지는 썰매에 앉은 상태에서 출발한다. 이 때문에 루지 선수들은 출발 직후 썰매에 조금이라도 더 속력을 붙이려고 팔을 앞뒤로 움직여 얼음을 지친다. 이때 손가락 스파이크로 얼음 트랙을 찍어눌러 필요한 추진력을 얻는 것이다.
루지 장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선수들은 야구나 골프 장갑에 루지용 스파이크를 사서 붙인다. 밴쿠버올림픽에 출전하는 이용(강원도청)은 "6개가 들어 있는 스파이크 세트가 60~70유로쯤 한다"고 말했다. 왜 6개가 한 세트일까. 다섯 손가락을 모두 써서 얼음을 지치는 것보다 검지·중지·약지만 쓰는 게 더 효과적이어서 선수들은 세 손가락에만 스파이크를 붙인다.
■봅슬레이 파일럿은 맨손이 더 편해
스키 종목 선수들이 끼는 장갑은 일반 스키어들이 끼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다만 벙어리장갑을 착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개성 만점의 경기복을 입는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선수들도 손기술 구사를 위해 동작이 둔한 장갑은 피한다.
스켈레톤이나 봅슬레이 선수들은 보통 손에 꽉 끼는 야구선수용 장갑을 끼고 경기한다. 스켈레톤 국가대표 조인호(강원도청)는 "연습할 때는 손바닥에 빨간 고무가 붙은 목장갑을 주로 낀다"고 말했다.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육중한' 장갑을 낀다. 날카로운 스케이트 날, 빠르게 날아다니는 퍽으로부터 손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갑을 벗는 것이 유리한 종목도 있다. 봅슬레이에서 파일럿(맨 앞에서 썰매를 조종하는 선수)은 장갑을 낀 다른 팀원들과 달리 맨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봅슬레이를 조종할 때 손끝의 미세한 감각을 총동원해 핸들을 움직여야 하는데 장갑을 끼면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다. 컬링 선수들도 과녁을 향해 돌을 굴릴 때는 장갑을 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