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여름을 준비하는 게 패션업계다. 이 업계의 2010년 키워드는 다름 아닌 '반전(反轉)'이다. 남자 같으면서도 여성스럽게, 투박한 듯하면서도 하늘하늘하게, 시골 여자 같지만 세련되게. 올해는 이렇게 입어야 '옷 좀 입는다'는 소리를 듣겠다.
샤넬이 지난가을 공개한 2010년 '기성복(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의 테마는 시골. 챙 넓은 모자, 꽃 장식이 붙은 구두, 닳아서 해진 듯한 재킷, 농장 아가씨가 신을 법한 나막신 샌들을 내놨다. 그야말로 '촌티' 패션이다. 샤넬 장회정 부장은 "세련된 스커트와 청바지 등과 매치해서 젊고 경쾌하면서도 섹시한 룩으로 보이도록 했다"고 말했다. 캔버스를 엮어서 만든 바구니나 커다란 꽃장식을 준비할 것. 대신 옷 전체가 꽃무늬인 것은 곤란하다. 가장자리에 꽃이 주르륵 붙어 있어도 몸체는 무채색을 고르는 게 좋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광고용으로 제작한 2010년 봄·여름 단편영화를 보면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 여주인공이 입은 옷은 바이커 재킷에 가죽바지. 하지만 속엔 얇고 하늘하늘하게 늘어진 새틴 소재 블라우스를 입어 여성스러움을 강조했다. 몸에 착 달라붙는 얌전한 니트원피스를 입을 땐 버클이 주룩주룩 달려 남성적인 멋을 풍기는 부츠를 신어주는 게 좋다. 무사들이 신는 것 같은 글래디에이터 샌들도 올해 계속 유행한다. 얌전한 숙녀복 아래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글래디에이터 샌들을 신어서 보는 이를 당황하게 해도 상관없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같은 톤으로 입지 말 것. 하늘하늘한 옷 위에는 투박한 재킷이나 묵직한 구두를 매치할 것. 그래야 멋을 일부러 안 낸 것 같으면서도 근사해 보인다고 이들은 웅변한다.
크리스찬 디올이 내놓은 봄옷 주제도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위에 걸치는 재킷이나 트렌치코트는 반짝반짝한 메탈 느낌, 군복 같은 느낌이 드는 디테일도 많다. 각진 어깨, 직선으로 내려오는 소매곡선도 위풍당당하다. 하지만 코트를 벗으면 이건 웬 속옷이야 싶다. 부들부들한 실크소재, 하늘하늘한 레이스, 투명한 망사까지. 관능미를 한껏 과시하는 옷이다. 디올 조영아 대리는 "한 가지 매력만 강조하면 질린다는 건 패션에도 통하는 법칙이다. 섹시함을 강조하기 위해 오히려 남성적인 느낌의 겉옷을 입는 법을 택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