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잡이로 훼손된 시체나 선혈이 낭자한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처음 목 잘린 시신이 화면 가득 등장했을 때, 뚫어지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시퍼렇게 죽은 피부와 불규칙하게 파열된 목, 초라하게 드러난 뼈. 이어지는 시신 해체 작업. 날카로운 칼에 의해 벌어진 몸 안으로 들어간 손이 장기를 찾아 더듬는 질척한 액체 소리와 몸 밖으로 나온 장기들의 표면에 생생히 살아있는 실핏줄과 근육 줄기들. 얼마나 사실적인가.

구한말 대한민국 최초 의사들의 이야기를 그린「제중원」(SBS)은 역사 의학 드라마답게 수술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수술 장면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면에선 ‘국내 의학드라마의 사실성 지평을 넓혔던’「하얀거탑」(MBC)과 맥을 같이 한다.

「제중원」에 등장하는 장면들중 가장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칼이 사람의 몸을 가를 때, 칼 따라 피부가 갈라지고,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장면이다. 마치 내 몸에 칼이 닿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였다. 거칠지만 한 땀 한 땀 상처를 봉합하는 장면 또한 그 바늘 끝 하나하나의 날카로운 찔름이 느껴졌다.

제작진에 의하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마네킹뿐만 아니라 가짜 피부를 배우 몸에 붙이는 특수 분장을 했고, 이를 이용하여 마치 직접 시술을 하는 것처럼 촬영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죽은 시체에서 꺼낸 장기들은 고무 라텍스로 사람의 장기와 동일한 모양을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피 흘리는 장면에서는 피가 그냥 주르룩 흘러내리는 반면, 「제중원」에서는 심장 박동에 따라 피가 솟아나도록 장치를 하여 그 사실성을 더 극대화 시켰다. 이런 제작진들의 노력 덕분에 드라마는 강력한 흡인력으로 시청자들을 TV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고화질 영상이 일상화된 요즘 웬만한 드라마는 HD로 제작되지만, 처음 HD 드라마가 등장한 것은 10년 전의 일이었다. 국내 최초의 HD드라마로 기록되어 있는「에어포스」(MBC, 2000년작). 하늘을 누비는 전투기들의 화려한 비행장면은 HD 영상을 처음 접하는 시청자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당시에는 그저 선명하고 깨끗한 화면 그 하나만으로도 족했던 시절이다.

이후「대장금」(MBC), 「태왕사신기」(MBC), 「아이리스」(KBS), 「비천무」(SBS) 등으로 이어지면서 대작은 대작답게 사실적이고 웅장하게, 멜러는 멜러답게 감미롭고 유려하게 영상미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시청자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새로운 것에 대한 만족의 시간이 몹시 짧다.  ‘보다 더 사실적인 화면, 보다 더 생생한 음질, 보다 더 감동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원한다. 그런 시청자들의 요구가 방송제작 기술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지만, 과연 그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첨단기술의 발전 덕분에 드라마가 보여주는 허구의 세계가 보다 사실적이 되고 있지만, 오히려 부지불식간에 허구를 사실이라 믿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매한 걱정이 든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너무나 정교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