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감독상.'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선수들은 일본 출신 반다이라 마모루(番平守·41) 감독대행을 이렇게 불렀다. 반다이라 감독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19일 물러난 어창선 전 감독의 후임이자, 2005년 프로 출범 이후 5년 동안 다섯 번째로 바뀐 흥국생명의 새 사령탑이다.

반다이라 감독은 24일 KT&G전에서 벤치에 앉지 못했다. 챔피언전 통산 3회 우승에 어울리지 않는 현재의 성적(6승10패·4위)이나, 구단의 기대 때문에 어깨가 무거운 듯했다. 경기 내내 코트 바깥에 서서 "리시브!", "블로킹!" 등 '만국 배구 용어'를 외쳤다. 작전 시간엔 통역을 통해 "서브 리시브를 할 땐 이쪽에서", "블로킹을 좀 더 높게" 등의 지시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결과는 1대3 패배. 최근 4연패이자, 부임 이후 2연패였다. 경기 두 시간 전에 만난 반다이라 감독은 "나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 어떻게든 팀과 맞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것이 프로의 세계니까"라고 했다.

흥국생명 반다이라 감독이 24일 KT&G와의 경기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한국 여자배구의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 지만, 팀은 4연패 수렁에 빠졌다.

갑작스러운 지휘봉

반다이라 감독대행은 작년 6월 한국 배구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2004년부터 일본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며 세계선수권(2006년) 6위, 베이징올림픽(2008년) 8위 등 준수한 성적을 거둬 여러 일본 실업팀으로부터 감독직 제의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의 세밀한 배구를 전해 달라"는 흥국생명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빠르게 성장하는 한국 여자배구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고 한다.

일본에 아내와 세 아들을 두고 한국으로 건너온 '코치 반다이라'는 리시브·네트플레이 등 흥국생명의 수비와 조직력을 돌보며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어창선 전 감독이 사퇴한 직후인 18일 오후 9시 무렵, 구단으로부터 "당신이 감독대행"이라는 급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2005년 프로배구 출범 이후 첫 외국인 사령탑이 된 것이다. 반다이라 감독은 본인의 놀란 가슴부터 진정시켜야 했다. 그리곤 더 큰 충격을 받았을 선수들을 불러 "프로답게 개인감정은 접어두고 경기에 일단 집중하자"고 당부했다.

첫 경기는 바로 다음 날인 19일 도로공사전. 잘 풀릴 리가 없었다. 꼴찌팀에게 끌려 다니며 갈팡질팡한 흥국생명은 결국 1대3으로 졌다. 정신없이 데뷔전을 마친 반다이라 감독은 용인 합숙소로 돌아와 자정을 넘겨가며 선수 16명과 개인 면담을 했다. 물론 통역이 필요했다.

"여유를 갖고 하겠다"는데…

엿새간의 '초보감독' 생활은 7개월 동안 코치생활과 맞먹을 만큼 힘들었다. 전략은 물론, 선수 몸 상태와 훈련 일정까지 직접 관리해야 하니 눈코 뜰 새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언어의 벽이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외국인 선수 카리나에게 무슨 말을 할라치면 일본어 통역과 스페인어 통역을 낀 '4자 회담'이 불가피했다.

반다이라 감독은 "당분간 훈련 때 손·발짓, 눈빛까지 이용해 전술 부분을 최대한 반복하고, 경기 땐 한두 가지 몸짓으로 선수들과 서로 느낌을 통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수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흥국생명 한송이는 "신임 감독님이 조직력과 단단한 수비 말씀을 많이 하신다. 작전 연습이나 훈련시간이 훨씬 늘어났다"고 말했다.

반다이라 감독의 목표는 플레이오프 진출(3위까지)과 2년 연속 챔피언전 우승이다. 간판스타 김연경이 일본(JT마블러스)으로 건너간 탓에 성적이 떨어졌지만, 신장과 파워가 좋은 흥국생명에 일본 배구의 세밀함만 접목된다면 우승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프로팀이 몇 게임 만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차근차근 기반을 닦아 한국 여자배구 수준을 올렸다는 평가까지 듣고 싶다"고 했다. 구단에는 "여유를 달라"고 요청했다. '감독들의 무덤'인 흥국생명에서 '여유'의 유통기한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해졌다.

◆반다이라 마모루 감독

▲1969년 1월 18일 일본 오사카 출생
▲선수 경력=1987~1991년 일본 동아(東亞)대학
▲지도자 경력=1991~2000년 다이에 오렌지어택 코치, 2000~2005년 히사미쓰 제약 코치, 2005년 10월~2009년 3월 일본 여자 대표팀 코치(2006년 세계선수권 6위, 2008년 베이징올림픽 5위), 2009년 6월~2010년 1월 흥국생명 코치, 2010년 1월 19일~현재 흥국생명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