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레키죠'(歷女)들에게 한국의 '왕조(王朝) 투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레키죠'는 역사의 '역(歷)'과 여성을 뜻하는 '여(女)'의 합성어. 역사에 관심있는 여성이란 의미로 최근 몇년간 일본 내에서 책·드라마·영화·여행 등을 소비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로 떠올랐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신문은 제일생명경제연구소 보고서를 인용, 그녀들의 소비 시장 규모를 700억엔(약 89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왕조 투어'의 시작은 소박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여행사 KI투어가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2007년 4월 서울, 공주 송산리 고분, 부여박물관, 정림사지5층석탑 등 백제, 부여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당일 코스 상품을 내놓은 것. KI투어 윤성철 대표는 "일본 중·고생 수학여행 등을 대상으로 불국사 관람 등을 끼워넣은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왕조의 유적과 역사 유물 관람으로만 일정을 짠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백제 낭만호(號)'라는 이름을 단 이 상품은 2007년 한 해 동안 1560여명을 불러모은 것을 시작으로 2008년에는 2000여명이 이용했고, 지난해 12월 말까지 총 5600명이 넘는 일본인을 끌어모았다.
이 상품이 인기를 끌자, 지난해 12월에는 일본 최대 여행사 중 하나인 JTB가 아예 4박5일 코스의 상품을 내놓았다. 경주의 신라 왕릉과 조선시대 고궁 관람이 추가된 일정이다. 상품 이름은 '한국 왕조의 가도(街道)를 걷자'. 처음에는 반응을 보기 위한 1회성 기획 상품이었지만 60명이 밀려들면서 올 1월부터 월 10회 출발하는 정기상품이 됐다. JTB 홍보팀 아시자와 메구미(芦��惠)씨는 "그간 한국 여행 상품은 많았지만 이렇게 왕조를 특화한 상품은 처음이어서 모험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상품 출시 직후부터 이렇게 인기가 높은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JTB측은 다음 달부터는 상품 가격도 3만9800엔에서 4만2800엔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KI투어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왕조 투어'를 찾은 이유로 "한국 역사에 대한 흥미 때문"이라는 대답이 36%로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한국 드라마 때문"(15.4%)이었다. 전체 관광객 중 여성의 비율은 70%였고, 이 중 40~60대 여성 비율이 73%다. 인상적인 관광코스는 백제 무령왕릉과 국립 부여박물관이 꼽혔다.
한국관광공사 전략상품팀 백지혜 대리는 "정조대왕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이산'의 일본 방영, 또 지난해 6월 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일본 내에서 조선 역사문화에 대한 관광 매력이 더욱 늘어났다"면서 "2010년에는 지진희씨 등 한류스타를 광고 모델로 내세워 한국의 왕조, 고궁 관광을 적극 홍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