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방송가는 '노비 신드롬'으로 시작됐다. 그간 역사의 그늘에 숨어 있던 조선 시대 노비들을 소재로 한 액션 사극 KBS 2TV '추노'가 방송 3회 만에 시청률 27.2%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본지 1월 15일 보도
도망친 노비를 잡아들이는 기관은 고려 때부터 있었다. 이들은 공(公)노비를 쫓아다녔다. 고려 원종은 1269년 세도가들이 남에게 불법으로 빼앗은 노비를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을 설치했다.
이후 충렬왕(1276년)이 인물추고도감(人物推考都監)을, 공양왕(1391년)이 인물추변도감(人物推辨都監)을 각각 설치했다. 노비 문제가 매우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노비 문제는 조선시대에도 이슈였다.
태조(1395년) 때 노비 업무를 맡는 노비변정도감(奴婢辨正都監)이 생겼는데 이곳에선 노비 신분을 분별하거나 노비 한 명을 두고 여럿이 주인이라고 나섰을 때 분쟁을 해결하고 도망간 공노비를 잡아들이는 일을 했다.
도망치는 노비들이 늘자 노비추쇄도감(奴婢推刷都監)이 따로 만들어졌다. '추쇄'란 도망간 노비를 붙잡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뜻이다. 세조·성종·중종·명종·효종에 노비추쇄도감이 한시적으로 운영되다 없어졌다.
임시기구였던 추쇄도감은 지방에 '추쇄관'을 파견했다. 고을 수령이 도망간 노비를 잡으면 추쇄관에게 보고하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추쇄관과 지방관이 결탁하는 폐단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이들은 실제 잡아들인 노비 수보다 실적을 부풀리기도 했다. 결국 영조 때 '추쇄관 파견제'는 사라지고 수령이 알아서 노비를 잡도록 했다. 그렇다면 드라마 '추노(推奴)'는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한 것일까.
지승종 경상대 사회학과 교수는 "드라마에서처럼 사노비를 잡는 일종의 '사설탐정조직' 같은 '추노꾼'은 사료상으로 기록된 바는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라고 했다.
지 교수는 "사라진 사노비는 주인이 찾지만 세도가는 지방관에게 체포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오희문의 '쇄미록(刷尾錄)'에는 선조 28년 임진왜란 중 자신이 충청도 직산 현감에게 부탁해 도망간 사노비를 잡았다는 일화가 있다.
지 교수는 "드라마에서처럼 다시 잡아온 노비의 얼굴이나 몸에 '奴(노)' '婢(비)' 등의 글씨를 새기는 자자(刺字)형은 형벌 중에서도 악형에 해당해 사노비에게 사형(私刑)으로 문신을 새기는 일은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추노'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없었을까? 영조 때인 1732년 이후 창작된 것으로 보이는 '김씨남정기'는 가장 오래된 추노 소설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추노계 소설은 많지 않다.
1730~1920년 사이에 쓰인 '김씨남정기' '김학공전' '신계후전' '살신성인' '삼강문' '탄금대' 등이다. 정준식 동의대 국문과 교수는 "양반이 노비에게 배신당하는 이야기는 수치스러운 소재였기에 이례적인 작품들"이라고 했다.
김씨남정기는 18세기 초반 전라도 영광에서 발생한 '황동로 추노사건'을 다룬 팩션(faction)이다. 충청도에 살았던 양반 황동로는 부인 김씨 가문이 몰락하고 사노비들이 도망가자 처가를 대신해 추노에 나선다.
황동로는 노비들에게 살해돼 부안의 갯벌에 시신으로 버려진다. 4년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복수에 나선다.
정 교수는 "드라마 '추노'와 달리 추노계 소설들은 '노비가 주인을 배반해 도망가고, 주인이 노비를 잡기 위해 험난한 역경을 거친 뒤 결국 관권의 힘을 빌려 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