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이시윤(李時潤·75) 전 감사원장은 20일 서울중앙지법의 'PD수첩 무죄' 판결과 관련, "MBC가 사과방송을 한 것을 보면 '일방의 견해만 방송한 사실이 있다'고 했더라"면서 "자백을 한 것인데, 그 이상의 (유죄) 증거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21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판사가 이 부분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62년부터 판사와 법원장, 헌재 재판관, 감사원장으로 35년을 공직에서 보낸 법조계 원로다. 1999년부터 민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민법 개정작업을 지휘하기도 했다.

그는 "개별 사건은 담당 판사가 가장 많이 알 수밖에 없다"면서도 "(법관이)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헌법 지도 이념인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무시하는 것은 직책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이목을 끈 사건에 납득하기 힘든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강기갑 의원 무죄가 그런 사건 아닌가. 그 판결에 과연 의회 폭력을, 반문명을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는 건지 회의적이다. 국회 사무총장 탁자 위에서 점핑(공중부양)을 한 것인데, 어떻게 무죄가 되나. 지난번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권한쟁의사건 심판 때도 의회 폭력은 결코 용납되면 안 된다는 것이 헌재 다수 의견에 거론되지 않았더라. 실망스러웠다."

이시윤 전 감사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역삼동 법무법인 대륙아주에서 최근 법원에서 내려진 강기갑 의원 및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판결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공교롭게도 문제 된 판결 모두 단독 판사가 했다.

"옛날에도 단독 판사가 막강한 권한이 있다고 해서 '서울시장 안 부럽다'고 했었다. 혼자 마음대로 결단을 내릴 수 있으니까. '여섯 개의 눈은 두 개의 눈보다 더 많이 본다'는 독일 법언이 있다. 세 사람(합의부)은 한 사람(단독 판사)보다 더 잘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파급효과가 엄청난 사건은 재정합의부(단독 판사 3명이 구성하는 합의부)를 활용했어야 한다."

―경험이 부족한, 너무 젊은 판사들에게 재판받는다는 불만도 있는 것 같다.

"평균 수명이 80세에 육박하는 시대이니 일단 65세 내지는 70세를 판사 정년으로 놓고, 평균 연령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일본은 판사보를 10년 해야 판사가 된다. 미국식으로 변호사 가운데 뽑는 것도 바람직하지만 우리나라는 인간적인 인연이 강한 나라다. 미국식으로 간다면 도덕성을 판사 선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재판부마다 다른 판결로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정치권까지 사법개혁을 얘기하고 있다.

"정치권이 나서면 사법의 본질에 저촉되는 문제를 초래해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될 위험이 있다. 헌법의 테두리(삼권분립)를 벗어나지 않게 제도적으로 견제할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서는 판사 혼자 하는 것 같지만 배심원이 판사를 견제한다. 미국에는 쟁점이 공통되는 사건을 하나의 법원이 집중 관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다."

―이념 편향을 가졌다는 의심을 받는 법관 모임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법원 연구 모임은 1973년도 민사실무연구회라고 해서 우리가 처음 시작했는데, 이후 법원 내 연구회가 우후죽순 생겼다. 그 과정에서 우리법연구회가 생겼다면 연구 모임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다만 지금은 국제화시대인데 '우리 법' '우리 것'이라는 개념이 시대에 맞는지 의문이다. 법을 하는 사람은 무색무취여야 하는데, 그분들은 이념적 색채가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우리법연구회의 해체나 작금의 법원 사태에 대해 대법원장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판사는 독립 관청이라 판사 위에 대법원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은 마치 행정부의 장관처럼 생각하지만 대법원장은 사법 행정의 감독관이지 재판의 감독관은 아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판결은 최종심(상고심) 재판장으로서 질책을 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무엇보다 인사독점권을 갖고 있다. 판사는 10년마다 연임하는 제도가 있다. 이걸 활용하면 균형 감각을 잃은 판사를 견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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