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보드를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농구에서 팬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폭발적인 덩크슛과 그림 같은 3점슛이지만, 정작 승패는 몸싸움이 치열한 골밑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아무리 좋은 슈터도 야투 성공률이 50%를 넘기는 쉽지 않다. 슛을 10번 쏘면 적어도 5~6차례는 빗나간다는 얘기인데, 이렇게 림을 외면하는 볼을 많이 걷어내는 리바운드(rebound) 능력이 승부를 좌우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하승진, 11년 만에 토종 챔피언 도전

21일 현재 리바운드 1위는 국내 최장신(2m21)인 하승진(KCC)이다. 하승진은 경기당 9.90개의 리바운드로 LG의 크리스 알렉산더(2m16·9.89개)를 간발의 차로 앞서 있다. 08~09시즌 평균 8.22개로 전체 9위에 그쳤던 하승진이 타이틀을 넘볼 만큼 성장한 것은 꾸준한 체력훈련으로 하체를 단련한 덕분이다. 힘이 달려 골밑에서 자리를 못 잡거나 균형을 잃고 넘어졌던 지난해의 모습은 올해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체력이 좋아져 경기당 출전시간이 6분가량(08~09시즌 23분→올 시즌 29분) 늘어난 것도 리바운드가 많아진 이유 중 하나다. 만약 하승진이 1위를 차지한다면 서장훈(당시 SK·98~99시즌 13.97개) 이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리바운드 왕이 된다.

■리바운드에도 색깔이 있다

리바운드에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이와 파워다. 키가 크고, 힘이 좋으면 골밑에서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하승진과 타이틀 경쟁을 벌이는 알렉산더를 비롯해 크리스 다니엘스(2m6·KT&G), 나이젤 딕슨(KT)은 힘을 앞세운 정통파 센터들이다.

이와 달리 뛰어난 탄력으로 리바운드에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도 있다. 현재 득점 1위(21.95점)인 LG 스몰포워드 문태영은 작은 키(1m94)에도 경기당 평균 리바운드가 7.79개(6위)다. 농구대잔치 시절 최정상급 센터로 위력을 떨쳤던 김유택 대구 오리온스 코치는 "문태영은 팔도 길고 높은 점프력을 지닌 데다 리바운드 포착 지점을 파악하는 능력이 좋다"고 했다.

브라이언 던스톤(모비스·1m99)이나 허버트 힐(오리온스·2m4)도 뛰어난 탄력과 순발력을 앞세워 공중에서 볼을 걷어낸다. 리바운드 9위(평균 7.00개)인 함지훈(모비스·1m98)은 덩크슛을 엄두도 못 낼 만큼 점프력이 형편없지만 리바운드 지점을 예측하는 능력만큼은 KBL 선수 중 최고다.

■키 작아도 리바운드에선 안 밀려

KBL 통산 최다 리바운드 1위는 서장훈(전자랜드·2m7), 2위는 김주성(동부·2m5)이다. 하지만 3~5위는 주희정(SK)·이상민(삼성)· 신기성(KT) 등 키가 1m85를 넘지 않는 단신 포인트가드들이다. 몇년 뛰지 못하는 외국 선수들이 통산 순위에 못 미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들이 다른 국내 장신 선수를 제친 것은 다소 뜻밖이다. 이에 대해 주희정은 "가드도 정확하게 볼 낙하지점을 예측하고 적극적으로 골밑에 가담하면 리바운드 잡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득점·어시스트·리바운드에서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7차례나 트리플더블(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스틸·블록슛 중 3개 부문에서 두자릿수를 기록하는 것)을 기록했다. 올 시즌 포인트가드 중 가장 많은 리바운드(3.57개)를 잡아낸 삼성의 이정석은 전체 순위가 24위지만 국내 선수로만 따지면 9위로 쭉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