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20년 만에 우파 대통령이 당선됐다. 좌파 일색인 중남미에 콜롬비아페루에 이어 새로운 우파 정권의 교두보가 생긴 것이다.

17일(현지시각) 열린 칠레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중도우파 야당 연합의 세바스티안 피녜라(Pinera) 후보는 51.61%의 득표율을 기록해 48.38%를 얻은 집권 중도좌파 연합의 에두아르도 프레이(Frei) 후보를 이겼다. 이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4~1990년 집권) 독재정권 이후 20년 만에 이뤄진 우파로의 정권교체다. 피녜라 당선자는 오는 3월 11일에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이날 오후 9시30분 피녜라 당선자는 수천여명이 모인 수도 산티아고의 한 호텔 앞에서 "단 1분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며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고 손을 흔들며 열정적으로 연설했다.

사실 미첼 바첼레트(Bachelet) 현 칠레 대통령은 성공적인 경제운영으로 지지율이 80%에 달한다. 그런데도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은 피녜라 당선자가 중도좌파 20년 집권에 식상해한 국민들에게 변화란 메시지로 집요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이곳 언론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는 "천재적 두뇌"에 "동물적인 경제 감각"을 갖추고 "성공의 고속도로"를 쉼 없이 달려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외교관 집안에서 태어나 칠레 최고명문인 가톨릭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단 3년 만에 마쳤다. 1976년 귀국한 그는 미국에서

본 신용카드업을 칠레에 도입해 대박을 터트린다. 이를 바탕으로 남미 최대 항공사인 LAN항공의 대주주, 공중파 방송 칠레비전 등을 소유한다. 현재 그의 재산은 주식평가액만 약 1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적 성공을 등에 업고 그는 1989년 상원의원에 도전해 당선됐고, 2005년 처음으로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뒤 두 번째 도전 만에 대통령이 된다.

화려한 성공 뒤엔 그늘도 있다. 1982년 은행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자 잠적했고, 2007년에는 LAN의 주식을 거래하면서 내부자 정보를 이용했다며 68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또 1992년에는 친한 기자와 짜고 당내 경쟁자를 TV 쇼에서 곤경에 빠뜨리려던 계획이 비밀리에 녹취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피녜라 당선자는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정책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직접 강조했다. 칠레는 지난 20년간의 좌파정부 시절에도 50여 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경제정책은 철저히 실용 노선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튼 우파의 물줄기는 중남미의 이념지도를 바꿀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코스타리카 총선(2월)부터 ▲콜롬비아 총선(3월) ▲콜롬비아 대선(5월) ▲브라질 대선(10월)까지 연결되는 선거일정에서 우파의 약진이 점쳐지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룰라 대통령의 지지율이 80%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중도우파 야당 후보인 조제 세하(Serra) 상파울루 주지사의 지지율이 여당 후보인 딜마 호우세피(Rousseff) 수석장관보다 높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