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5일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위원장 김정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청와대 등에 보복 성전"을 언급한 이후 17일에는 '무력시위'를 하듯 김정일의 육·해·공군 합동훈련 참관을 보도하자 우리 정부도 '예사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날 조선중앙TV는 정오 특별 방송을 편성해 김정일의 훈련 참관을 보도하며 김정일 사진 4장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240㎜ 방사포 차량 10여대가 나란히 포신을 올리고 있는 사진이 1장 포함됐는데, 240㎜ 방사포는 사거리가 60㎞이기 때문에 서울 등 수도권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작년 12월 시작된 북한군의 동계훈련은 예년에 비해 크게 강화된 수준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우리측에 '무력 협박'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했다는 분석이다. "(제한된 도발 등) 추가 행동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안보부서 당국자)는 언급도 이런 맥락에서다.
또 다른 주목할만한 움직임은 16일 이후 북한 주요 매체들에서 대남(對南) 관련 보도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TV 등은 새해 들어 줄곧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다가 국방위 성명 이후 대남 관련 보도를 중단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유화로 가던 대남 정책을 180도 틀려는 것 아니냐"(북한 소식통)는 우려가 나온다.
이처럼 북한이 지난 15일 오후 4시까지 '옥수수 1만t 지원 수용' 의사를 밝히다가 2시간 만에 '초강경'으로 선회한 배경에는 "자존심 상한 김정일 위원장의 격노가 깔려 있을 것"(안보부서 당국자)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북한은 작년 10월 자존심을 접고 '임진강댐 수공(水攻) 사건'을 사과했고, 남북정상회담과 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먼저 요청했지만 우리 정부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에 김정일 체제 존립과 직결되는 '급변사태 비상계획'에 대한 우리측 언론 보도가 나오자 김정일이 분노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날 조선중앙방송은 "쌓이고 쌓인 분노의 표출인 듯 순식간에 전투를 승리로 결속(마무리)하는 가슴 후련한 훈련"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 '쌓이고 쌓인 분노'는 김정일 등 북한 수뇌부의 남한에 대한 불만으로 풀이된다. "강경 군부 세력이 김정일에게 '더 이상 참으면 안 된다'고 부추겼을 것"(서재진 통일연구원장)이란 설명도 가능하다.
또 김정일의 합동훈련 참관 보도는, 우리측의 유사시 대응 방안이 남북 간 군사 충돌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체제 보위' 의지를 다진 것으로 보인다. '무력시위'를 통해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체결의 시급성을 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북한이 올해 들어 냉·온탕을 오가는 대남 행태를 보이는 것에 대해 "북한이 초조한 것 같다"(안보부서 당국자)는 분석이 많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화폐개혁 이후 민심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은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정일로선 '반전(反轉) 카드'를 서둘러 뽑아야 할 이유가 있다"(이조원 중앙대 교수)는 것이다. 북한의 협박은 '대화냐 대결이냐'를 빨리 결정하라는 재촉이자 '북이 손을 내밀 때 잡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란 협박이란 설명이다.
이런 김정일의 '다음 수'에 대한 예상은 엇갈린다. 제한된 무력 도발 가능성이 있지만 서재진 원장은 "협박 외에 북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고 했다. 북한이 17일 현재 '보복 성전' 성명을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라디오)으로만 보도한 것은 "대외 협박용에 그칠 것이란 의미"(김용현 동국대 교수)란 관측이다. 김정일의 합동훈련 참관(15일 낮)이 국방위 성명 발표(15일 18시) 이전에 이뤄진 것도 '엄포용 보도'임을 뒷받침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19일 개성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 해외공단 공동시찰 평가회의가 북한의 향후 태도를 점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등 강경하게 나오면 당분간 남북관계 경색은 불가피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