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미국 연수를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것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덴버(Denver)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하다 모든 여행자들이 가장 저주하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무작위 표본 검사에 걸려 모든 짐을 다 해체당하고 별도의 단상에 올라 검색요원들이 직접 손으로 온몸을 더듬는 촉수 검사까지 받게 됐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우리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몇 시간 뒤에 디트로이트공항에 착륙하려던 다른 비행기에서 폭탄 테러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비행 자체가 취소된 경우가 수두룩했고, 보안 검색은 당연히 강화됐다.
지금 미국은 강화된 보안 검색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자사의 웹사이트에서 공항 검색에 대한 개인의 경험을 한번 공유해보자고 했다. 15일 오후까지 총 340여명의 독자들이 사례를 올려놨다. 각종 모멸감과 분노가 가득하다.
뉴햄프셔의 밥 아넛(Arnot)의 사례는 이렇다. "나처럼 인공관절을 단 수십만 미국 국민들은 항공여행을 포기하는 게 낫다. 금속탐지기를 통과할 때마다 삑삑거린다. 더 웃기는 건 금속탐지기가 요즘의 플라스틱 폭탄을 막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교통안전국(TSA)은 아흔다섯살 먹은 할망구의 엉덩이 인공관절에 신경 쓰는 대신 정밀 스캐너 하나를 마련하는 게 더 낫다"고 일침을 가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여성 마거릿(Margaret)은 이게 단지 미국만의 사례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덴마크 코펜하겐공항에서 남자였던 검색요원이 내 은밀한 곳까지 더듬으며 촉수 검사를 실시했다"고 했다. "만약 프라이버시가 인정되는 별도의 공간에서 존중심을 가지고 검사했다면 이렇게까지 모멸감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흥분했다. 이 정도면 거의 성희롱, 성폭력이다. "미국은 지금 공포 정치다. 차라리 우리를 발가벗긴 뒤에 목욕 가운 입혀서 비행기에 태워라"는 익명의 야유도 등장했다.
물론 검색요원들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스위스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알랭 드 보통(Botton)이 이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일주일 동안 영국 히드로공항에서 숙식하며 '상주 작가'로서의 경험을 펴낸 '공항에서 일주일을―히드로 다이어리'에서 작가는 검색요원들이 기본적으로 모든 탑승객을 항공기 폭파범 후보자로 보라고 교육받는다고 했다. 테러리스트는 오렌지주스 병을 들고 있는 여섯살배기 소년일 수도 있고, 장례식에 참석하고 취리히로 날아간다는 늙은 할머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종의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전략을 제안했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제지도 받지 않고 탐지기를 통과하여 터미널 반대편으로 들어가면 마치 고해를 한 뒤 교회를 떠나는 느낌,(…), 잠시나마 죄의 짐이 완전히 또는 일부라도 덜어졌다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는 것. 문제없이 통과하는 것을 일종의 게임으로 즐기라는 얘기다.
궤변일 수도 있다. 하지만 테러 가능성이 있는 한 개인 프라이버시를 완벽하게 보장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올해 여행업계가 예상하는 2010년 해외 여행객 숫자는 무려 1200만명이다. 이럴 땐 탑승객 개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이 유머러스한 작가의 아이디어가 현명한 전략일지 모른다. 물론 세계의 공항 검색요원들이 탑승객 개개인의 인권과 자존심을 단 한시도 잊지 말고 검색에 임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은 당연한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