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노키아·모토로라·소니에릭슨 등 세계 22개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상대로 3000억원대 특허침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기술은 3세대 이동통신 휴대전화의 전력 소모량을 줄여 배터리 사용시간을 크게 늘리는 것과 관련된 7개 특허기술이다. 연구원이 독자 개발한 이 기술들은 지난 2000년 국제표준으로 채택돼 전 세계 휴대전화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다.

연구원은 소송을 제기한 22개사 중 중견업체 2개사와는 이미 200억원 규모의 로열티를 받기로 합의했다. 22개 업체로부터 받을 수 있는 로열티 총액은 3억달러(3300억원)로 예상하고 있다.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업체에 대해서는 별도로 로열티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 미국 퀄컴사로부터 2세대 이동통신 CDM 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을 들여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원천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국내 휴대전화업체들은 지금까지 매출액의 5~6%에 해당하는 5조원을 퀄컴에 로열티로 갖다바쳤고, 퀄컴의 특허기술은 유효기간이 20년이지만 일부 기술이 새 기술로 계속 대체되면서 그 기간이 계속 연장되고 있다. 세계 소비자들이 한국산 휴대전화를 살 때마다 퀄컴은 배를 불리고 있다.

연구원이 세계 유명 업체로부터 로열티를 받아낼 수 있게 된 것은 2세대 이동통신 개발 경험을 토대로 3세대 이동통신의 일부 원천기술을 개발한 덕분이다. 연구원은 4세대 이동통신 '와이브로' 기술도 독자 개발해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2세대 휴대전화 비중이 80%에 이르는 세계 휴대전화시장의 중심이 3세대·4세대로 넘어가게 되면 우리도 일방적으로 로열티를 내기만 하는 처지에서 차차 벗어나게 될 것이다. 기술은 기술자와 연구원이 개발한다. 그러나 그 기술에 제값을 받아내고 그 기술의 권리를 유지해 나가는 것은 경영자와 소송 기술에 능란한 법률 전문가의 몫이다. 그런 관점에서 로열티를 일시불로 한 번에 받고 끝낼 것인지 아니면 퀄컴처럼 장기 계약으로 할 것인지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원천기술 빈국(貧國)이다. 2008년 기술 수출 25억3000만달러, 기술 수입 56억7000만달러로 31억4000만달러의 기술무역 적자를 냈다. 적자 규모도 2003년 24억2100만달러에서 크게 늘었다. 미국이 2006년 359억달러의 기술무역 흑자를 냈고 이어 일본 46억달러, 영국 36억달러, 프랑스 29억달러, 스웨덴 23억달러의 순이다. 특허 수입 세계 2위인 일본도 2003년에야 기술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섰다. 로열티 내는 나라에서 로열티 받는 나라가 거저 될 수는 없다. 원천기술 개발의 토대가 기초과학 육성이라는 사실을 바로 보고 장기적·적극적 투자를 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