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바이든을 못 믿었다. 매케인은 페일린 때문에 노심초사했다. 빌 클린턴은 오바마를 애송이 취급했다. 힐러리는 남편 빌을 구제불능 문제아로 여겼다….'
2008년 미 대선 레이스의 이면(裏面)이다. 당시 막후 사정을 담은 저서 '게임 체인지'(Game Change)가 11일 출간됐다. 흡사 미 정가에 떨어진 폭탄이다. 책에 묘사된 해리 리드(Reid)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오바마 발음이 '니그로' 투가 아니라고 한 자신의 인종비하적 발언을 사과했다. 그는 공화당으로부터 사퇴압력까지 받고 있다. 저자는 주간지 '뉴욕'과 '타임'의 정치 전문기자인 존 헤일만(Heilemann)과 마크 핼퍼린(Halperin)이다. 이들은 300명 넘는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거쳐 대선상황을 재구성했다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당시 민주당의 대선 러닝메이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무대 위에서는 손을 잡았다. 하지만 서로 말도 잘 안 할 정도로 껄끄러운 사이였다. 그해 9월 바이든은 취재단에게 "내가 러닝메이트(오바마)보다 대통령으로 더 적격"이라고 했다. 이를 전해 들은 오바마측은 바이든에게 내부회의 일정도 알리지 않았다. 대신 고위 보좌관들이 그와 정기 모임을 갖는 식으로 '제어'했다. 10월 바이든이 "세계는 케네디에게 그랬듯이 오바마에게도 (취임 후) 6개월 이내에 시험할 것"이라고 하자 오바마는 "바이든은 얼마나 더 멍청한 이야기를 할 거지?"라며 격분했다.
민주당 경선 때만 해도 힐러리 클린턴은 자신만만했다. 그녀는 2007년 가을 이미 자신의 러닝메이트를 물색했다. 하지만 당내 일부 원로들은 2006년 가을부터 오바마에게 대선 출마를 권했다. 당에 활력을 불어넣고 본선에서 이길 적임자라는 판단에서였다. 아내 힐러리를 지원한 빌 클린턴이 당내 원로인 에드워드 케네디(Kennedy) 의원에게 말했다. "몇년 전만 해도 이 친구(오바마)는 우리한테 커피나 갖다줬을 사람이오." 빌은 케네디의 눈 밖에 났다.
빌 클린턴은 힐러리에게 골칫거리였다. '선거전(選擧戰) 상황실' 안에 또 다른 '전쟁 상황실'을 차려야 했다. '남편 클린턴의 리비도(libido·성욕)로 인한 위협을 전담 관리하는 팀'이었다. 힐러리는 스태프들에게는 남편의 '심각한 혼외관계'가 터져 나올 것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오바마가 대통령 당선 후 힐러리에게 국무장관직을 권했을 때도 그녀는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그를 통제할 수 없어요. 언젠가 그가 문제가 될 거예요"라며 남편의 스캔들을 우려했다.
공화당의 존 매케인-세라 페일린 후보 진영도 위태위태했다. 매케인팀은 페일린에 대한 기초 검증을 5일 만에 끝내고 74개 질문지를 작성해 그녀에게 건넸다. 페일린은 답안 작성을 몇 시간 만에 해치웠다. 후보 지명 후에도 매케인측은 페일린의 산후우울증이 걱정돼 그녀의 '정신불안증 가능성'을 의논했다.
페일린의 '짧은 식견'도 문제였다. 그녀는 6·25 참전국의 지도자를 꿈꾸면서 왜 남북한이 별개 국가인지도 몰랐고, 9·11 테러 배후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있다고 믿었다. 페일린은 CBS 앵커 케이트 커릭(Couric)과의 인터뷰에서 답변을 제대로 못하는 수모를 겪은 후 후보 수락을 후회했다. "이제 알게 된 걸 예전에 알았더라면 (수락) 안 했을 거예요." 뒤늦은 탄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