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엔 시키지도 않는 일기를 매일매일 썼었고 독후감 대회에서 상도 자주 탔었다. 아직도 틈틈이 일기를 쓰는 이유는 일기를 쓰고 나서면 무언가 정리되는 것 같고 나도 모르던 내 속의 독소와 노폐물들이 쏟아져 나와서, 유산소 운동으로 땀을 빼고 난 후와 같은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나간 일기를 들춰보는 건 현재의 나를 다시 보게 되기에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음악을 하면서는 가사 쓰는 게 좋았다. 처음 가사를 쓸 때는 그냥 하고 싶은 얘기들을 쓰다가 남에게 주는 가사는 역시 맞춤옷 같은 거라 내 시각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시선에서 써야하는 어려움을 겪으며 그냥 내 옷이나 내 멋대로 지어입자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자유분방한 나의 글쓰기는 내 입맛에만 맞춰져 있었기에 타이틀감에서는 늘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분출의 도구, 생각의 배설이라는 면에서 나에겐 치료방법과도 같은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었다. 남의 생각을 노래로만 표현하는 것으론 성에 차지 않아서 가사까지 내 손으로 지어 놓으면 비로소 그 노래가 진실로 내 몸을 통해 나온 내 새끼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애착이 가는 노래에는 가사도 한 번에 술술 잘 나오기 마련이고 그렇게 공감대가 단번에 형성된 노래는 부를 때도 가슴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아직까지 글쓰기를 이토록 좋아할 수 있었던 건 전문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 음악동아리 선배가 한 말이 기억난다. 4학년 졸업반에 그 선배는 그렇게 잘 치던 피아노를 매몰차게 외면하고 전공을 살려 취직을 선택했다. 왜 좋아하는 음악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좋아하는 건 직업으로 삼는 게 아니야"라는 알 수 없는 대답을 하며 생긋 웃었다.

직업이라는 것은 좋아할 수 없는 것인가?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징그러운 밥벌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인가? 돌이켜 보니, 가수가 되고 나서 사람들과 노래방에 가는 게 꺼려졌고, 가끔 하기 싫은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내 맘처럼 되지 않을 때, 내 한계를 느낄 땐 왜 내가 하필 노래를 택했을까 후회했던 날도 있었다. 할수록 어려워지는 느낌, 내가 원하는 것과 남들이 원하는 것 사이를 조율하는 것에 지치기도 했었다.

전문적인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일 리가 없다. 누구나 한 분야에 정통해지기까지 몇 년, 몇 십 년씩 마음과 몸을 다해 청춘을 불사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가끔은 싫어질 때도 있지만 그건 성장통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성장을 위해 겪어야만 하는 아픔, 마냥 좋기만 할 수는 없는 게 당연하기에 그런 아픈 과정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 '직업'인 가보다.

그런 과정을 거쳐내고 나면 고수의 경지인 즐기기에 이르게 될 것 같다. 엘라 피츠 제럴드가 공연 중에도 루이 암스트롱 모창을 하며 즐거워하던 모습, 바비 맥퍼린이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처럼 목소리를 갖고 놀듯 노래하는 모습이  그 경지의 모습일 것이다. 즐긴다는 건 어찌 보면 갖고 놀기와 같은 의미일 테니, 갖고 놀 수 있으려면 그만큼 능력이 갖춰져야  편히 갖고 놀 수 있게 되는 법이다.

한 가지 일을 평생 동안 하는 모든 사람들은 존경의 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열심히 출근하는 직장인도, 대를 이어 음식점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일흔이 되도록 공연을 하시는 뮤지션들, 작가들, 한 가지 일에 지치지 않고 평생을 바치는 우리 모두가 큰 일을 해내는 사람들인 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개미처럼 꾸준히 일하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덕분에  이만큼 잘 살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새해가 되어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모든 일을 취미처럼 재미있게 하기. 지겨워하거나 너무 괴로워하지 않고  열심히 빠져서 심각하게 즐기기.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처럼 재미있어 하되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것. 즐겁게 하는 길만이 지치지 않을 수 있는 비법이자, 고수가 되는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