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에 25㎝가 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지면서 새해 첫 출근길에 오른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버스 운행이 중단되는가 하면, 차량들도 눈길 위에 갇혀 직장인과 학생들이 지각하는 일이 많았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박모(44)씨는 4일 아침 창밖에 내린 눈을 보고 승용차 출근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박씨는 광역버스를 타고 오전 8시 30분쯤 출근길에 올랐다. 하지만 버스는 정류장에서 불과 4.5㎞ 떨어진 판교 톨게이트에 진입조차 못한 채 톨게이트로 가는 고가도로에서 3시간 15분간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다.
눈길에 미끄러져 방향을 잃은 차들이 얼기설기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버스에서 내린 박씨는 지하철로 향했다. 지하철로 향하는 길에 박씨는 회사 간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도 경기도입니다. 오늘 시무식 참석은 어렵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출근하겠습니다." 박씨는 "버스에서 내린 승객 중 중년 남자 한 명은 고가도로 위에서 노상방뇨를 했다"며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 낮에 노상방뇨 하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박씨는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오후 1시 30분에야 회사에 도착했다. 출근하는 데만 꼬박 5시간이 걸린 셈이다. 박씨는 "새해 첫 출근인데 정말 복장 터져 죽는 줄만 알았다"고 했다.
관공서와 기업들의 시무식도 잇따라 연기됐다. 한국방송광고공사는 이날 오전 9시 15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직원 170명이 참석하는 시무식을 열 예정이었지만 폭설로 45분 늦췄다. 사공일(69)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눈길에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에 갇혀 이날 오전 9시로 예정된 시무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공 회장은 승용차 안에서 휴대전화를 통해 사내 방송을 하며 직원들에게 새해 각오를 전달해야 했다. 또 국무회의도 장관 지각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는 폭설로 인해 시작 시각이 오전 8시에서 20분 늦춰졌으나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현인택 통일부 장관 등 일부 장관들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사는 김혜수(42)씨는 4일 아침 9시까지 출근을 하기 위해 터널 길이가 555m나 되는 금화터널을 걸어서 통과했다. 평소 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김씨는 눈길에 버스가 오지 않자 고가도로를 걸어 올라갔고 금화터널을 지나 근무하는 신촌의 현대백화점 주변 편의점에 도착했다. 김씨는 "출근을 해야 하는데 버스는 코빼기도 안 보여 무작정 걸었다"고 했다.
학교·학원 수업은 줄줄이 취소 또는 연기됐다. 안상현(25·서울대 경제학부 4년)씨는 "신촌에서 영어학원 수업이 있어 신림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려고 했지만 매표소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며 "너무 숨 막혀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행히 수업이 미뤄졌다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정모(23·홍익대 4년)씨는 "간신히 버스를 잡아타고 학교에 가려는데 '계절학기 수업이 폭설로 취소됐다'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경기 안산에 사는 장모(38)씨는 폭설로 4일 오후 1시 30분에 예정된 면허기능시험도 보지 못했다. 장씨는 "면허시험 보려고 서울까지 2시간이 걸려 왔는데 허탕만 쳤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택시운전기사들도 폭설에 일찌감치 귀가했다. 택시기사 최재천(56)씨는 "눈이 와서 차를 움직이기도 힘든데 괜히 눈길에 남의 차 들이받아 돈 물어주느니 오늘은 영업을 접었다"며 "동료 80명 중 20명이 오전에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4일 오전 7시쯤에 서울 서대문구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CT 촬영을 받기로 한 조옥남(55)씨는 1시간이나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조씨는 "평소에는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병원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폭설에 차가 꽉 막혀 1시간이나 걸렸다"고 했다.
편의점 사장들도 기록적인 폭설에 발을 동동 굴렀다.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준섭(38)씨는 "눈길에 배달차량들이 미끄러져서 오늘 오전 9시에 배달돼야 할 상품들이 3시간이나 늦게 왔다"며 "계속해서 물건을 받아야 하는데 제때 올 수 있을지 속이 바짝바짝 탄다"며 애를 태웠다.
폭설에 서울 쪽방촌 노인들도 배를 주렸다. 김모(80·마포구 아현동)씨는 "우리 동네는 경사가 가팔라서 눈이 오면 차도 사람도 못 다닌다"며 "도시락 배달하는 사람들이 오지 못해 아침을 굶었다"고 했다. 신모(71·서대문구 북아현동) 할머니는 "눈이 많이 와서 미끄러워 집에서 한 발짝도 못 떼고 있다"며 "복지관에 식권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식은 밥으로 요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와 강남구에서는 눈이 두툼하게 쌓인 도로를 슬로프 삼아 스키를 타는 시민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