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일본문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젊은 세대는 일본 문화의 유입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던 시절에도 여러 통로를 거쳐 일본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했다.
일본 만화와 영화, 음악 같은 대중문화가 먼저 한국에 유입됐고, 이것은 일본인 생활과 사고방식의 전파로 이어졌다. 일본의 특정 문화에 대한 열광적인 기호를 뜻하는 이른바 '오타쿠'는 요즘 '덕후'라는 국적불명의 줄임말로 통용된다.
이제 일본문화는 새로운 문화를 '한국 입맛에 맞게' 전파하는 통로 역할까지 맡고 있다. 서양음식도 일본을 거쳐 들어와야 한국에서 통하고, 방송사들은 일본 TV 프로그램의 형식을 정식 수입하면서까지 일본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100여년 전 일본을 통해 들어온 서양음식은 '경양식(輕洋食)'이란 일본식 서양음식이었다. 이제는 정통 서양음식이 일본인 주방장과 인테리어, 서비스와 함께 한국 식도락 문화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서울 신사동 '스페인 클럽'은 정통 스페인 음식점이지만 일본 브랜드이며, 일본인 요리사를 두고 있다. 이곳을 찾은 김우영(22·대학생)씨는 "미국에서 맛본 스페인 요리보다 기름기가 적고 담백해 우리 입맛에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신사동의 이탈리아 식당 '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의 고향도 일본이다. 총주방장 살바토레 쿠오모씨는 이탈리아인이지만, 그를 내세워 일본 외식기업에서 만든 레스토랑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커피점 '폴 바셋'도 호주인 바리스타 폴 바셋을 내세웠지만 역시 일본 커피브랜드다.
외식기업들이 서양음식조차 유럽 본토가 아닌 일본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일본 외식 트렌드가 한국보다 약간 앞서 있어서 벤치마킹하기 이상적이고, 음식 맛이나 서비스 방식도 한국인 취향에 맞기 때문이다. 미국의 '하드락카페'와 프랑스 '이포포타무스' 등 본토에서 바로 들어온 외식업체들이 국내에서 실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외식기업의 정서·생리·체질이 한국과 비슷해서 일하기 편하고 효율적이란 점도 무시 못한다. 레스토랑 컨설턴트 김아린씨는 "유럽기업은 한국과 정서가 너무 달라 일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일본 TV 표절 논란에 시달려온 한국 TV는 요즘 아예 일본에서 프로그램 형식을 수입한다.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는 일본 동명(同名) 만화와 드라마 판권을 사들여 거의 똑같이 만들었고, SBS TV '퀴즈! 육감대결'은 일본 후지 TV에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헥사곤'이란 프로그램의 포맷을 그대로 쓰고 있다. KBS의 한 예능 PD는 "일본 방송을 보면 방청객 활용이나 자막 사용, 재연 드라마 끼워넣기나 기상천외한 벌칙처럼 재미를 주는 요소가 무척 많다"며 "새 프로그램 기획안을 만들 때 제일 먼저 참고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