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31일 밤 여야 몸싸움 끝에 당초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보다 1조원이 늘어난 292조8000억원의 새해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총 5조원가량의 4대강 예산에서 4250억원을 삭감하면서 여야 지도부를 비롯해 각 당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지역 개발 및 민원 사업을 밀어넣어 1조원 가까이 예산을 부풀렸다. 국회더러 국민 세(稅) 부담을 줄이고 정부의 예산 낭비를 감시하라고 일을 맡겼더니 오히려 국민 부담을 늘리는 딴짓을 한 것이다. 선진국 국회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벌였다면, 선진국 국민들은 필경 국회 해산을 위한 여론(輿論) 투쟁이라도 벌였을 것이다.
국회는 정기국회가 열린 이후 올 예산을 제대로 심의한 적이 없다. 민주당은 여야 심의가 시작되자마자 4대강 예산을 걸고 넘어지면서 예산심의를 전면 보이콧 하고 보름 넘게 예결위 회의장을 점거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걸 빌미삼아 자기들끼리 밀실에서 예산을 줄였다 늘렸다 하면서 만지작거렸다. 예결위가 정상 가동됐다 해도 정부와 여당이 국민이 못 보는 곳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예결위가 정상적으로 가동만 됐다면 아무리 간(肝) 큰 예결위라지만 언론과 시민단체, 국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의 점거 농성이 정부·여당에 밀실 협의의 멍석을 깔아준 셈이다. 민주당은 예산안 졸속 심의·통과를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산안 처리를 놓고 몸싸움을 벌이고 서로 욕설을 퍼붓더니 예산안이 통과되기 무섭게 여야 원내대표가 본회의장에서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이 실린 다음날 신문 사진은 4대강 예산을 둘러싼 여야 격돌이 사실상 국민 속이기 쇼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민주당은 이번 예산 투쟁에서 무엇을 얻었는지를 결산(決算)해 봐야 한다. 민주당은 4대강 예산 5조원 중 수질 개선 사업에 들어가는 1조원 정도만 남겨놓고 나머지 전액 삭감을 주장했지만 결과는 정부·여당이 자체적으로 4250억원 삭감하는 것으로 끝났다. 국회 농성과 몸싸움으로 국민 지지를 끌어낸 것도 아니다. 결사저지로 여당의 강행통과를 유도해 국민이 여당을 손가락질하도록 만들지도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예산안 부실 심의의 공범(共犯)으로 몰리고 있다.
한나라당도 청와대와 정부의 여의도 지부(支部) 역할을 하기에 급급했다. 정국을 이끌어가는 능력은 눈곱만큼도 보여주지 못했다. 국회는 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와 함께 이 문제의 전면에 나서게 되고, 아프가니스탄 파병안 등 다른 대형 현안들도 국회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 못난 국회가 그런 국가적 난제들을 다룰 자격이라도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