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에 거주 중인 영국인 저널리스트 팀 알퍼(Tim Alper)가 한국의 영어교육에 관한 칼럼을 주간조선에 집필하고 싶다고 해 간단히 정리한 아이디어를 보내드립니다. 네이티브 스피커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 영어의 문제점을 다뤄보는 것도 독자의 입장에서 재미있을 것 같네요. …(후략)”

지난 2008년 2월 22일, 이런 내용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영어(교육)는 사회 전반을 통틀어 ‘뜨거운 감자’였다. 취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이 ‘영어 공교육 경쟁력 강화’를 천명하며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묘안이 속출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당시 이경숙 인수위원회장의 일명 ‘오륀지(orange)’ 발언은 영어교육에 관한 정부의 무리수를 비난하는 이들로부터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메일을 보낸 이는 한국 여성 조은정씨. 팀 알퍼와 개인적 친분이 있던 그는 “한국어가 서툰 그의 부탁을 받고 대신 주간조선의 문을 두드렸다”고 했다. 조씨의 소개로 알게 된 팀 알퍼는 영국 가디언지 등과 함께 일했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당시 한국 최초의 영자 IT산업정보지를 표방했던 ‘코리아IT타임즈’ 에디터로 일하고 있었다. 영어교육 관련 자격증이 있어 런던에 거주할 당시 한국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학생을 가르친 경험도 있었다. 한국에선 P어학원에서 1년간 영어강사로도 활동했다. 조씨는 그를 “특히 한국 언어와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콩글리시·스포츠 칼럼에 독자 반응 쏟아져

주간조선이 처음부터 그에게 칼럼 연재의 기회를 준 건 아니었다. 때마침 주간조선은 그해 3월 초 ‘한국인들 영어가 엉망인 이유’란 제목의 커버스토리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이와 관련해 적절한 기고를 맡아줄 필자를 찾고 있던 참이었다.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주간조선 1995호(2008년 3월 10일자)에 그의 칼럼이 실릴 수 있었다. 제목은 ‘극단적 구어체와 문어체 뒤섞인 이상한 한국 영어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제안’. 그가 주간조선에 ‘입봉’하는 순간이었다.

팀 알퍼는 3월 말부터 주간조선의 고정 필자가 됐다. 칼럼 제목은 ‘영국인 기자의 콩글리시 비판’이었다. ‘최대의 적 콩글리시 이렇게 탈출하라’(1997호·2008년 3월 24일자)로 시작된 칼럼은 2~3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주간조선 독자들을 찾아갔다.

때론 한국인만 사용하는 이상한 영어 줄임말이, 때론 외국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한국인이 칼럼의 주제가 됐다. 엉터리 영어사전과 왜곡된 영어학원 문화, 터무니없이 비싼 영어교육비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2008년 11월 16회를 끝으로 칼럼이 마무리될 때까지 독자들의 크고 작은 반향이 이어졌다. ‘영어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로부터의 전화와 메일도 쏟아졌다. 지면 사정상 번역본만 게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문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칼럼을 계속 연재하고 싶어했다. “영어 외에 IT와 스포츠에 관한 글도 잘 쓸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왔다. 그렇게 시작한 게 ‘팀 알퍼의 스포츠 칼럼’이었다. 독자들의 원문 요청을 수용하기 위해 이번엔 영어 원문과 번역본을 나란히 싣는 영한대역 형태를 취했다. 그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프로축구 EPL(English Premier League)의 나라 영국 출신이었지만 칼럼 주제는 축구에서 야구로, 골프·스모·K-1으로 종횡무진 바뀌었다. 그때그때 국내에서 이슈가 된 일들에 맞춰 주제를 의뢰했을 때도 정확하게 마감시한을 지켜 원고를 보내왔다.

2009년 송년호에 실린 열세 번째 칼럼(‘스포츠맨다운 행동의 참뜻은 무엇일까?’)을 끝으로 연재 중단이 결정됐을 때, 그를 한번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년 9개월여 동안 30회 분량의 칼럼(원고 분량으로 따지면 200자 원고지 1000매는 족히 된다)을 공유한 인연을 한번쯤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그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직장이 바뀐 것. 그는 2008년 12월 1일 개국한 TBS 교통방송 영어전문 FM 라디오방송 채널 ‘TBS eFM’의 프로듀서로 채용됐다. 인터뷰는 지난 12월 21일 오전 서울 중구 예장동 TBS 방송국 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알고 보니 그는 주간조선의 열혈 독자였다. “칼럼 연재를 제의하기 전부터 주간조선을 즐겨 봤습니다. 굉장히 좋아하던 잡지였거든요. 제일 좋은 점이요? 음… 지면이 다채로운(various) 거요! 책 한 권에 정치·스포츠·문화·엔터테인먼트 등이 다 집약돼 있잖아요. 무엇보다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화롭게 녹아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읽다 보니 슬슬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내 목소리도 여기에 담을 수 있으면 좋겠다’ 하고요.”

사실 그의 한국어 실력은 ‘네이티브 코리안’ 수준은 아니다. 그런 그에게 시사주간지를 읽는 작업은 만만찮은 도전이다. 그도 “솔직히 쉽게 읽히진 않는다”고 말했다. “단어도 어렵고 문장도 길고… 조금 힘들어요. 그래도 챙겨 보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한국에서 살게 됐으니 한국에 대해 좀 더 많이 알아야 하잖아요. 말이 서툴다 보니 대화로 한국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건 아직 무리거든요. 요즘 한국에선 어떤 일이 뉴스인지, 어떤 사람이 유명한지, 한국인의 생각은 뭔지 그런 것들을 아는 데 신문이나 잡지가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영국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출신

그는 영국에서 주로 스포츠 쪽 기사를 많이 썼다. 그러나 정규 직원이 많지 않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비율이 높은 영국 미디어에서 스포츠 기자란 직업은 ‘레드오션’이었다. EPL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스포츠 기자, 특히 축구 분야에서 활동하려는 젊은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는 전문화(specialization)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래서 발견한 ‘틈새’가 아시아 축구, 그중에서도 한국 축구였다.

“한국을 처음 알게 된 건 1988년 서울올림픽 때였어요. 안다곤 하지만 그냥 이름만 들어본 정도였죠. 한국의 저력을 실감한 건 2002 한·일 월드컵 때였습니다. 언론에서 비쳐지는 ‘레드 데블스’의 응원 열기가 대단하더라고요.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당시 한국팀의 성적도 좋았잖아요. 이후 한국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활발해졌고요. 영국에서 한국선수들을 접할 기회도 많아 자연스럽게 ‘한국 축구를 연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처음 한국땅을 밟았던 2006년만 해도 그가 구사할 줄 아는 한국어라곤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정도밖에 없었다. 그나마 한국인이 제작하는 영자신문에 칼럼을 기고했을 당시 한국인 동료들에게 한두 마디씩 배운 게 전부였다. 다행히 입국 후 줄곧 한국회사에서 근무해 실력이 빨리 늘긴 했지만 아직도 한국인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야 하는 자리에선 식은땀을 흘린다. “(한국어 실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유창하다”고 했더니 그는 쑥스러워하며 “아니에요.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최근 라디오 프로듀서로 자리 옮겨

한국에서의 첫 직장 코리아IT타임즈는 당초 그가 하려던 스포츠 미디어와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불과 두세 명의 에디터가 매월 두툼한 분량의 책 한 권을 펴내는 구조였기 때문에 좋아하는 글을 마음껏 쓸 수 있었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영국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며 틈틈이 익혀둔 팟캐스팅(pod casting) 기술을 활용, 국내외 네티즌을 대상으로 코리아IT타임즈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팟캐스트란 아이팟(ipod)의 ‘팟’과 방송(broadcast)의 ‘캐스트’를 합친 말. 아이튠즈와 같은 응용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신문·잡지·방송 등의 콘텐츠를 본인이 원하는 기기로 구독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을 의미한다. 팟캐스터로 활동한 경험은 그가 TBS 프로듀서로 새출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요즘 그는 TBS eFM에서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방송되는 ‘더 스티브 해덜리 쇼(The Steve Hatherly Show)’를 맡고 있다. EBS FM ‘파워잉글리시’를 진행했던 호주인 스티브 해덜리가 진행하는 토크쇼다. 고정 게스트가 출연하고 라이브 공연도 펼쳐지며 신청곡과 사연도 받는 정통 라디오 프로그램 포맷이다. 점심식사 후 한창 졸릴 시간대라서 정치·경제 같은 딱딱한 뉴스(hard news)는 다루지 않지만 문화·생활 등 가벼운 소식은 늘 중요한 방송 재료다. 그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방송국 입사 후 습관처럼 시사적 이슈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했다.

기자와 라디오 프로듀서. 하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그는 “비슷한 점(similarity)도 많다”고 했다. “기자가 쓴 글에도 기자는 숨어 있지 밖으로 안 나오잖아요. 방송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글 쓰는 게 좋아요. 방송국 일 하면서도 펜을 놓지 않는 건 그 때문이죠. 글은 제 첫사랑이거든요(My first love is writing).” 그가 글감을 수집하는 방식은 지독할 정도의 메모다.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다이어리든 휴대폰 메모장이든 닥치는 대로 기록해뒀다가 글 쓸 때마다 꺼내어 활용한다. 메모하는 습관은 속필(速筆)이면서도 풍부한 비유가 살아있는 ‘팀 알퍼 칼럼’의 비결이기도 하다.

한국요리 매니아… 독창성에 감탄

콩글리시와 스포츠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던 그에게 “또 한번 도전해보고 싶은 칼럼 주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대번에 “음식(food)”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영국에서 작은 레스토랑 셰프로 일한 적이 있어요. 대단한 건 아니고 프리랜서 기자 벌이가 시원찮아 선택한 일종의 아르바이트였죠. 그래도 더러운 접시 설거지하고 양파 껍질 벗겨가며 조금씩 단계를 높여 익힌 조리기술 덕분에 여행 다닐 때 늘 수월하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어요. 현지어를 잘 못해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요리니까요.”

그는 한국생활을 하며 한국요리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됐다. 여느 외국인이 좀처럼 도전하지 못하는 전통 한식도 즐겨 먹는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추어탕. 그가 한국요리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료 사용의 독창성(creativity)이다. “콩을 예로 들어볼까요. 영국에도 콩은 있거든요. 그런데 영국사람들은 그걸 대충 익혀 샐러드에나 넣어 먹을 줄 알았지 갈아서 콩국수로 만들 생각은 안해요. 두부나 된장 같은 건 엄두도 못 내죠. 한국사람이 생각해내는 걸 영국사람들은 왜 못하는 걸까요. 그런 데서 제 호기심은 출발합니다.”

그에 따르면 영국엔 ‘맛집’의 개념도 없다. 그래서 ‘똑같은 음식을 어느 집은 잘하고 어느 집은 못한다’는 개념 자체가 처음엔 무척 생소했다고 한다. 그는 “한국요리의 독특함 이면엔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한국민족의 역사적 특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 음식에 대한 단상들을 칼럼으로 묶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직장·조기축구서 만난 친구들이 큰 재산

아직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일단 ‘팀 알퍼의 한국 정착기’는 순탄한 것처럼 보인다.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안정적 직장이 있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담아 한국인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도 꽤 많이 얻었기 때문이다.(그는 주간조선 외에도 축구 월간지 베스트일레븐과 무가지 M25, 경향신문 등에 칼럼을 연재했거나 하고 있다.) 영국에 있었으면 경쟁에 치여 일할 기회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곤란했겠지만 얼마 전엔 집세 비싸다는 서울에 전세집도 마련했다.

영국에 두고 온 가족이나 친구와 떨어져 지내는 아쉬움은 한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로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다. 그의 한국친구 중 3분의 1은 이전 잡지사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고 3분의 1은 지금 있는 방송국에서 친해진 사람들이다. 나머지 3분의 1은 조기축구 모임에서 사귄 이들이다. 그는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부모님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시더니 안심하고 돌아가시더라”고 말했다.

그의 운동실력은 그저 그렇다. 축구도 포지션을 정해놓고 할 만큼 잘하지 못한다. 조기축구회에 나가게 된 건 순전히 스포츠 칼럼을 잘 쓰기 위해서였다. ‘해보지도 않고 다른 선수의 플레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쓰는 건 프로페셔널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것. 같은 이유로 골프 칼럼을 쓸 땐 최소한 스윙법이라도 익히고 야구 칼럼을 쓸 땐 야구경기장을 찾는다. 때문에 그의 칼럼은 ‘100% 실전형’이다. 그런데 축구회 활동으로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수확을 얻었다. 말이 안 통해도 친해질 수 있는 스포츠의 특성 덕에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나게 된 것이다.

1977년생. 한국나이로 곧 서른넷이 되는 이 영국 청년은 "기회가 닿는다면 계속 한국에 지내며 경력을 쌓고 싶다"고 했다. 방송매체든 인쇄매체든 미디어 쪽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경계를 짓지 않고 열심히 도전해보겠다고도 했다. 인터뷰 내내 주간조선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표현했던 그는 "2년 가까이 귀중한 지면을 내어준 편집장 이하 모든 스태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칼럼 연재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주간조선의 꾸준한 독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분야가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끝으로 주간조선 독자를 위해 연재 내내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팀 알퍼의 이메일 주소(tda7@hotmail.com)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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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추어탕 한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