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담당 간수였던 스물일곱 살의 헌병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는 안 의사에게서 유묵을 받았습니다. 그는 훗날 일본으로 돌아간 뒤 안 의사의 영정을 절에 모셔놓고 죽을 때까지 20여년간 매일 향을 사르고 참배했어요. 그가 죽고 나서는 부인이 또 20년간 참배했고, 지금은 그의 양녀(養女)가 안 의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오후 2시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안중근 동양평화학교'에서 연사로 나선 박삼중 스님(자비사 주지)이 "일본인은 이렇게 대(代)를 이어 안 의사를 모시고 있는데, 한국인 중에 누구 한 사람 그런 사람이 있느냐"고 말하자 100여명 청중의 얼굴이 숙연해졌다. '안중근 동양평화학교'는 조선일보·안중근의사숭모회·예술의전당 공동 주최로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안중근 유묵전(遺墨展)'의 부속 행사로 매주 토요일 오후 마련되고 있다.
박삼중 스님은 안중근 의사와의 인연에 대해 "22~23년 전 일본으로 여행 갔다가 안 의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며 강연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불교대회에 참석했다가 인근에 있는 '다이린지(大林寺)'라는 절을 방문했다. 사찰 본전(本殿) 앞에는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란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비석이 있었다. 그가 궁금하게 생각하자 다이린지의 주지 스님은 지바 도시치가 안 의사에게 감동을 받아 절에 비석을 세우고 매일 참배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박삼중 스님은 이후 7~8차례 여순 감옥에 가서 추모제를 지내고, 안 의사 유해를 찾는 일을 주도했다. 이번 '유묵전'이 이뤄지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소장하고 있던 유묵 '敬天(경천)'과 안 의사 사진엽서를 내놓았다. 안 의사의 사생관을 보여주는 유묵인 '天堂之福 永遠之樂(천당지복 영원지락·천당의 복이 영원한 즐거움)'을 내주기 어렵다는 일본 소장자를 만나 설득도 했다.
박삼중 스님은 강연에서 "일본인 간수가 안 의사를 그토록 존경하게 된 이유는 안 의사에게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한 '성인(聖人)'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안 의사가 마지막 순간 지바 도시치에게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글을 써 준 이유를 두 가지로 풀이했다. 먼저 나라를 위해 생명을 던진 행위는 정당한 것이라는 자신의 심경을 말한 것이고, 또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일본인 간수 지바 역시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있다고 위로한 것이란 해석이다.
지바 도시치의 후손은 안중근 의사 탄신 100주년이던 지난 1979년 안 의사의 유묵을 한국의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했다. 일본인 간수와 그의 자손이 70년간 고이 간직해온 이 유묵은 서울역사박물관에 기탁 보관돼 있다가 이번 전시에 나왔다.
박삼중 스님은 "국내외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안중근 의사 유묵을 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아 유묵전을 연다고 했을 때 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참배하는 마음으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룰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실망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각계 전문가들이 안중근 의사에 대해 강연하는 '동양평화학교'는 이번이 여덟 번째로 앞으로 조광 고려대 교수(1월 9일), 마키노 에이지 일본 호세이대 교수(1월 16일) 등 두 차례 더 강연이 이어진다. '안중근 유묵전'은 1월 24일까지 계속 열린다. 문의 (02)580-1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