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 대해 대북(對北) 강경노선을 완화하자는 주장이 솔솔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이 특사를 보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고 북한도 6자회담 복귀를 언급하는 등 긴장완화 분위기가 조성되자 이에 발맞춰 우리도 유연하게 나가자는 취지다. 이 대통령도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하는 등 취임 초 자신의 대북자세에 어떤 변화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은 우리의 기존 대북자세를 바꿀 때가 아니다. 강경이든 완화든 어떤 방향전환도 바람직하지 않고 그저 북한의 변화를 예의주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금 북한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정권에 대한 인민의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시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가 북한문제를 언급할 때 분명히 해야 할 몇가지 전제가 있다. 첫째 북한과 김정일 정권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북한을 말할 때 인민(또는 인민의 삶과 권리)과 권력집단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북한을 내재적(內在的) 접근법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것을 편리하게 뒤섞어 '북한'을 도와주자고 하지만 그것은 북한의 지배계층 또는 권력집단을 도와주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김정일 집단의 영구적 지배를 묵인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에 적어도 '덩샤오핑'식의 개혁세력이 나서서 북한의 경제를 살리고 인민의 삶을 개선하는 권력교체가 이뤄지길 바라는 것인가에 스스로 대답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을 얘기할 때 '김정일'에 머물지 말고 북한인민의 삶, 북한의 경제회복, 평화적 공존 같은 명제들을 항상 떠올려야 한다. 우리는 일부 대북완화론자들이 들고 나오는 막연한 개념의 '북한'과 '6자회담'과 '비핵화'에 사기당하지 않아야 한다.

새삼 그것을 상기하는 이유는 지금 북한에 중대한 '인민적'차원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탈북 소식통들에 의하면 근자에 북한당국이 실시한 화폐개혁으로 인해 인민과 권력집단 간의 10년에 걸친 '싸움'이 불거지고 있다. 시장(市場)을 매개로 탈(脫)정부적 경제활동을 해온 '인민'들은 그동안 북한 당국의 계획경제를 크게 흔들어왔다. 이런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김정일 세력'은 화폐개혁으로 '시장세력'의 차단에 나섰고, 인민들은 대규모 북한 탈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 경찰·보안책임자의 방중(訪中)은 북한인민의 탈출러시를 막을 국경의 경비강화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동안 한국의 대북지원은 북한인민들의 시장(市場)싸움에서 당국 쪽을 지원해 주고 인민들을 괴롭게 만든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지난 10년의 대북지원을 김정일 집단만 살려준 것이라며 반대해왔다. 지금처럼 중요하고 민감한 시기에 또다시 대북 완화론이 득세하고 지원이 이뤄진다면 이것은 시장을 통한 인민들의 투쟁에서 김정일 집단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했다.

특히 내년은 북한이 지난 97년, 98년의 식량위기를 능가하는 사태를 당하게 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올해의 작황이 크게 나빴고 외부의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시장기능마저 봉쇄당한다면 내년 춘궁기에 대규모 아사사태가 발생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게다가 북한 인민들은 10년 전의 인민들이 아니다. 이들은 시장을 통해 한국의 각종 드라마까지 접하고 있을 정도며 남쪽의 생활상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한 탈북자는 "화폐개혁은 어쩌면 시장을 통해 형성된 북한 인민들의 사설경제의 뇌관을 건드린 것"이라고 했다.

일부 대북완화론자들은 북한당국의 '6자회담 복귀'를 대단한 것인 양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6자회담 복귀는 대북협상의 시계를 10여년 전으로 되돌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6자회담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성과를 보장할 수도 없다. 김정일 집단은 스스로 막다른 길에 들어서고 있음을 안 것 같다. 때마침 미국내 협상론에 몰린 오바마 대통령의 처지를 역이용해 대미(對美)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는 김정일 정권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면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핵의 문제는 잠시 실종된 듯하다. 북한인민들의 인권과 삶 역시 논외로 밀린 것 같다. 대신 전면에 등장한 것은 진부한 '6자회담'복귀이고 '대북특사'이고 '평화체제'이고 '대북완화'이다. 김정일 집단이 최대 위기로 몰리고 있는 시점에 또다시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마저 나서서 저들을 돕는 것처럼 비치는 아이러니를 설명할 방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