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박 감독(55).

초등학교 5학년때인 1965년 야구를 시작해 2009년 LG 트윈스 감독 자리를 떠날 때까지 45년 동안 단 순간도 쉬지 않고 야구판 현직에 있었다.

'김재박'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바로 한국 야구사를 대변할 정도다. 1977년 실업야구 7관왕, 골든글러브 5회, 1985년 도루왕, 11시즌 동안 팀을 4번 우승시킨 명감독, 사령탑 최고 몸값 기록을 깼던 감독, 최연소 900승 감독 등등.

현역 시절엔 최고의 선수, 지도자로 변신한 뒤엔 명 감독으로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스타중에 스타였다.

'명장' 반열에 오르면서 지난 2007년부터 3년간 친정팀인 LG를 맡았지만 단 한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결국 재계약에 실패했다. 지난 96년 현대 유니콘스 창단 감독을 맡은 이래 13년 만에 처음으로 야구 현장을 떠나 '야인' 생활을 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유니폼을 벗은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연말 각종 시상식과 행사, 인터뷰에 등장해 여전히 대중과 교감하고 있다. 반면 김 감독은 지난 10월 시즌이 끝난 뒤 공식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많은 야구인들은 한동안 그와 연락이 되지 않아 근황에 대해 궁금해 하기까지 했다.

현대 감독 시절부터 담당기자로 친분을 쌓은 덕에 김 감독과는 꾸준히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김 감독이 지인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 초대 받았다. 이날 김 감독을 비롯해 현대 시절부터 김 감독을 보필했던 정진호 코치와 신언호 감독(배재고) 등과 술잔을 기울이며 야구 이야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2차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선 김 감독과 단둘이 더욱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시즌이 끝난 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현장에 있을 때보다 더 바빴다. 여기저기 보자는 사람도 많았고, 좋아하는 골프도 실컷 쳤다. 해외에도 한번 나갔다 왔고, 제주도도 몇번 갔다왔다. 평소처럼 운동도 꾸준히 하고, 한의원 치료도 받고 있다. 오랜만에 집사람이랑 많은 시간을 보낸다. 평생 그렇게 보내지 않다가 딱 붙어 다니니까 좋은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다.(웃음)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LG에서 잘리고 나서는 한동안 전화를 받지 않았다. 기분이 그렇기도 했고, 뭐 할 말도 없었다. 뻔한 인사 전화인데 좀 있다가 받자 싶었다. 지금은 다 받고 있다.

-수십년 보냈던 현장에서 떠나는 게 서운할 것 같다.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다. 어차피 지금은 야구 시즌이 휴식기니까. 그런데 내년에 시즌이 시작하면 기분이 이상할 것 같기도 하다.

-감독으로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였나.

▶1998년 현대를 이끌고 우승했을 때다. 96년 창단팀 감독으로 3년만에 우승을 이끌었는데 정말 기뻤다. 2004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을 꺾고 우승한 것도 잊을 수 없다. 9차전 잠실서 비가 억수같이 내려 그라운드가 진흙탕이었다. 96년 한국시리즈에서 해태 타이거즈 소속의 김응용 감독한테 패배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쁨이 더 컸다.

-한창 잘 나가다 도하 아시안게임 때 큰 아픔이 있었다.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잘 해보고 싶었다. 군미필자 위주로 팀을 만들다보니 전력이 약했고, 경험도 부족했다. 감독의 작전으로 돌파했어야 했는데 당시엔 뭔가에 홀린 듯 했다. 야구를 하다보면 그런 순간들이 가끔 있다. 좋지 않은 쪽으로 순식간에 분위기가 흘러가 버릴 때가 있다.

-지난 3년간 LG에서도 아쉬운 점들이 많았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성적을 내지 못했으니까 책임을 지는 것이다. 다만 현대와 LG 선수들은 분명히 달랐다. 강력하게 변화를 줬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게 있어 아쉽다. 구체적으로 말하기엔 좀 그렇다. LG가 잘 됐으면 좋겠다.

-시즌 막판 박용택 타격왕 밀어주기 때문에 비난을 받기도 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교감해 박용택을 도와준 것이다. 우리 팀 선수가 잘 되길 바라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됐다. 비난에 대해선 인정한다. 깨끗한 야구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계획은.

▶야구판을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야구 발전을 위해서 어떤 일이든 할 생각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해 봉사할 수도 있다. 내 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김재박 야구'를 보여주고 싶다.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처음으로 찾아온 휴식 기간 동안 더 공부해 변화를 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