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의 아키히토(明仁) 일왕 면담 성사 과정을 둘러싸고 촉발된 일본 내의 '특혜 면담' 논란이 일왕의 정치적 지위를 둘러싼 본격적인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 민주당 정권의 일인자로 통하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은 14일 이번 논란의 발단이 된 궁내청(宮內廳·왕실 담당 행정기관)의 의전 원칙에 대해 "그런 원칙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신에게 "(천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비판한 하케다 신고(羽毛田信吾) 궁내청 장관에게 사실상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하케다 장관은 이를 즉각 거부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의전원칙은 외국인이 일왕을 면담하려 할 경우 30일 이전에 문서로 신청하도록 한 궁내청 내부 지침이다. 고령(76세)인 일왕의 건강을 고려해 1995년 시행된 이 지침은 2004년부터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하케다 신고 궁내청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부주석의 면담 요청이 이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데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 등의 압박 때문에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천황이 정치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까지 했다. 13일 일본 주요 언론들은 이번 면담 공작 막후에 오자와 간사장이 있다면서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이런 비판에 발끈한 오자와 간사장은 14일 기자회견에서 "'30일 룰'이라는 것, 누가 만들었느냐. 법률로 정해진 것도 아무것도 아니지 않으냐"면서 "천황폐하의 국사(國事)행위는 국민이 뽑은 내각의 조언과 승인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다. 그것이 일본 헌법의 이념이자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을 '너'라고 부르면서 헌법을 다시 읽어보라고 몇번이나 얘기했다. 또 "(30일) 룰이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엔 "없어도 좋은 것 아닌가"라면서 "궁내청의 공무원이 만들었으니까 금과옥조라는, 절대적인 것이라는, 그런 바보 같은 얘기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오자와 간사장은 하케다 장관에 대해 "일본의 헌법과 민주주의 정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면서 "그것도 내각에 소속된 국(局)의 간부 공무원이 내각의 방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려면 사표를 내고 하라"고 했다.
오자와 간사장의 이런 말들은 일왕을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일왕의 승인하에 이뤄지고 있는 관행과 원칙을 노골적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큰 파문이 예상된다. 특히 내각의 '조언과 승인' 아래서만 일왕의 국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헌법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것은, 천황의 '신성(神性)'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에 앞서 야당인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시진핑 부주석이 일본에 도착하기 직전 "지금까지 지켜져온 룰(1개월 전 신청)을 깬 것은 천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만큼 중국 측에 면담 요청을 철회하도록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각 총무성의 부대신도 13일 비슷한 입장을 밝힌 바 있어, 논란 양상은 점입가경이다.
한편 시진핑 부주석은 14일 낮 일본에 도착, 이날 저녁 하토야마 총리와 만나 양국관계를 전략적 호혜관계로 확대 발전시켜나간다는 데 합의했다. 양국 정부는 15일로 예정된 일왕과 시진핑 부주석 간의 면담은 예정대로 진행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