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웨스트우드 홈페이지 나오미 캠벨이 1993년 비비안웨스트우드 패션쇼에서 모크 크로크를 신고 걷다 넘어지면서 킬힐바이러스라는 단어가 생겼음.

영국의 패션디자이너 비비안웨스트우드는 높이가 무려 30~40㎝나 되는 구두 '모크 크로크'를 디자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거대한 나막신처럼 생긴 이 구두를 신고서 무대 위를 걷다 넘어진 모델들도 많다. 패션계에서는 모델이 높은 구두를 신고 엉거주춤 걷다 넘어지는 현상을 두고 '킬힐 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킬힐(Kill heel)’은 굽 높이가 10㎝가 넘어 까치발을 해야 신을 수 있는 높은 구두를 말한다. 10㎝가 족히 넘는 구두를 신고 총총 걸음으로 거리를 걷다보면 신은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아찔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킬힐’이다. 지난 11월 서울 수서경찰서는 12㎝ 구두로 택시기사를 폭행한 김모(여·2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말 그대로 ‘흉기(?)’로 쓰인 것이다.

킬힐은 올해 여성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밑창에 굽이 붙어있는 ‘플랫폼 힐(Platform heel)’이 대표적이다. 과거엔 일명 ‘통굽 구두’라고 불렸을 법한 이 구두는 1~2년 전부터 다양한 디자인으로 출시되기 시작했다. 앞굽이 있어 발목이 심하게 꺾이는 것을 막아주니 뒷굽은 더 높아졌다. 도톰한 앞굽을 감쪽같이 감춘 날렵한 디자인, 투박한 굽을 그대로 노출시켜 육중한 멋을 풍기는 디자인 등이 쏟아져 나왔다.

높은 구두가 유행하자 올 한해 도로 위에도 ‘킬힐 바이러스’ 바람이 불어닥쳤다. 대학생 이지은(23)씨는 지난 여름 10㎝ 높이의 검은색 오픈토 힐(Open toe heel·앞코가 뚫려 있는 구두)을 신고 계단을 내려가다 앞으로 고꾸라졌다. “다행히 난간을 붙잡았어요. 난간에 매달린 채로 2~3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왔죠. 일어나보니 무릎에선 피가 나고 있었어요. 발목이 시큰해 2주 동안 고생했어요.”

이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높아봤자 높이가 7㎝정도 되는 구두를 신었는데 막상 킬힐을 신고 걸으려니 만만치가 않았다”고 했다. “킬힐을 신으면 다리도 길어지고 날씬해 보여서 쉽게 포기할 수 없어요.”

증권회사에 다니는 윤선영(25)씨는 중요한 미팅이 있을 때마다 킬힐을 신는다. 윤씨는 “키가 173㎝지만, 킬힐을 신으면 더 당당해 보이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아 챙겨 신는다”고 했다. 윤씨는 “높은 구두를 신고 거리를 걷다보면 신는 사람의 발이 망가지거나, 구두가 망가지거나 둘 중 하나”라며 “높은 구두를 신고 걸어본 여자들은 누구나 보도블럭에 굽이 끼어 구두에 상처가 생기거나, 울퉁불퉁한 곳에서 발목을 삐끗한 경험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미라(31·메이크업 아티스트)씨는 평소에는 킬힐을 신다 직장에서는 슬리퍼로 갈아신는다. 아예 신발주머니에 굽이 없는 플랫슈즈를 따로 넣고 다니는 동료들도 있다. 매일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신씨는 “중요한 자리에서만 킬힐을 신다가 혼자있을 때는 재빨리 낮은 신발로 갈아신어 발에 부담을 줄인다”고 했다.

이처럼 구두를 신고 비포장도로는 물론 맨홀, 보도블럭 틈새를 피해 엉거주춤 걷는 여성들이 늘어나자, 지난 4월 서울시는 '여성이 걷고 싶은 길'을 만들기로 했다. 지금까지 어린이대공원 앞길, 천호대로 디자인길 등 서울시 8개 지역 총 5.6㎞ 구간에 하이힐을 신고서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이 생겼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서영주 실장은 “서울시는 ‘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구두굽이 끼지 않도록 틈새 2㎜ 이하의 바닥재를 깔거나 매끄러운 대리석, 투수성 마감재로 길을 만들었다”며 “맨홀도 가급적 설치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황치석(여·48) 연구원은 “‘여행길 프로젝트’는 서울시청 여직원들이 직접 도심의 거리나 인사동 등지의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구두 앞코와 뒷굽이 까져봤던 경험을 토대로 낸 아이디어”라며 “구두를 신은 여성, 유모차를 끌고가는 여성들이 걷기 편한 길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최경진 원장은 “높은 구두를 신어 엄지 발가락 밑 뼈가 튀어나오는 무지외반증 환자가 한 달에 30~40명 찾아온다”며 “높은 구두를 자주 신는 여성들은 발가락으로 볼펜을 잡거나, 발목으로 글씨를 쓰는 등의 운동을 꾸준히 해주는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롯데백화점 김훈성(34) 수석 머천다이저는 "전국 롯데백화점의 13개 G매장의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에 판매한 구두 중에 50~60%가 10㎝이상의 킬힐 제품이었고, 올해에는 70%가 킬힐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화려하고 극단적인 패션이 유행하면서 내년에도 구두 굽의 높이는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크리스찬 루부탱 홈페이지 '크리스찬 루부탱은 2009'년 킬힐 열풍의 주역이다. 12cm짜리 킬힐.

최경진 원장이 말하는 발관리 비법

1) 매일 더운물에 10분정도 발 마사지 하기

2) 발가락으로 볼펜을 잡거나 수건을 잡는 발가락 운동

3) 발목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글씨 쓰기

4) 발가락 사이를 지압하기

5) 아킬레스 신장 운동(뒤꿈치 근육을 유연하게 하는 운동)

-양팔을 벽에 붙이고 양발을 앞뒤로 벌린다.

-벽에 몸을 기대고 뒷다리의 발꿈치 근육을 당겨 스트레칭한다.

-한번에 3초 이상, 양쪽 발을 번갈아가면서 하루 10회 이상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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