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광화문 한복판에서 촬영한 KBS 2TV 드라마 '아이리스'의 총격전 장면이 9일 방영된다. 이처럼 국가 정보요원이 시내에서 총격전을 벌인 사례가 실제로 있었을까. 한 안보전문가에게 문의하자 "총기소유가 엄격히 제한됐기 때문에 도심 총격전은 무장공비가 출현할 때나 가능했던 일"이라며 "이제까지의 총격전은 대부분 무장공비들의 침투 루트인 산간이나 해안지역에서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시내에서도 총격전이 존재했다. 1969년 10월 15일, 통행금지가 막 끝난 새벽 4시 20분쯤 신촌로터리 부근에서 총성이 울렸다. 연세대 인근의 한 여관 주변에서 무장간첩과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직원들의 총격전이 벌어졌다. 당시 신문은 중정 직원 2명이 총상을 입을 정도로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고 전했다. 무장간첩은 격투 끝에 생포됐다.
남파된 무장간첩이 고정간첩과 접선해 와해된 ‘통일혁명당’을 재건하려다 검거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었다. 당시 중정은 공작금 120만원, 무전기 2대, 권총 2정, 암호문건 10점 등을 압수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에 대해 또 다른 안보전문가는 “간첩들은 무기를 쓰기 전에 체포조의 선제공격을 받아 포박되거나 사살되는 게 통상적이지만 중정 직원이 총상을 입을 정도의 총격전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이 작전에 참여했던 A씨를 수소문 끝에 만났다. 그는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차량이 폭파되고 폭탄이 터지는 스펙터클한 상황은 아니었다”면서도 “추운 날 밤새 서리를 맞아가며 잠복근무를 하던 그 순간의 긴장감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 시절에는 무장간첩들의 출몰이 심할 때라 중정 직원들은 입사 때부터 철저한 사격훈련을 받았다”며 “수많은 보수교육 중에서도 사격훈련만은 필수적이었다”고 했다. 그날 밤의 간첩단 일망타진 역시 꾸준한 사격훈련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도 최첨단 사격시설에서 훈련하며 많은 명사수들을 배출했지만 지금 후배들의 수준은 우리 때와 비교도 안 될 만큼 발전했다”고 치켜세우며 “일부 정치인들이 이들을 한동안 밧줄로 묶어놓았었다”고 비난도 덧붙였다.
“간첩 체포 후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가족들이 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움을 갖는 동료도 뜸하게 있었습니다. 인간이니까요. 그러나 정보요원이라면 이미 입사 때부터 ‘국가안보’라는 과업에 생사를 걸고 임했기 때문에 생사관 자체가 초연합니다.”
그는 안보 현실에 불만이 많았다. 특히 각종 간첩단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회 일각의 주장에 분개했다. 그는 “극소수의 착오가 있을 수 있다”고 시인하면서도 “절대다수의 경우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둔갑시킨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만일 그랬다면 당대의 엘리트를 자부하는 우리(중정 직원)들이 자신과 처자식의 목숨을 다 내놓고 총격전에 왜 뛰어들었겠습니까. 한가한 노년에 바라는 것이라고는 고삐 풀린 안보의식이 바로 서는 것일 뿐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이병헌씨처럼 멋지지는 않았겠지만 국가안보라는 일념으로 총을 쥔 것만큼은 똑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