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는 엑셀로 만든 표가 깔끔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오피스텔 호수, 시간, 목격상황이 깨알같이 적혀 있다. 90X호, 오후 9:07, 남학생 2명이 들어감. 14XX호, 오후 9:24, 남고생 1명이 퇴장한 뒤 5분 뒤 남학생 2명 들어감, 180X호, 오후 8:55, 열린 문으로 학생 3명이 실내에서 대기중인 모습이 보임….

23일 오후 8시, 서울 양천구 목동 H타워 앞. 교복차림의 중·고등학생, 제 몸집만한 배낭을 멘 초등학생 십여명이 끊임없이 오고갔다. 두툼한 검은 코트를 걸친 남자 5명과 정장 차림의 여자 2명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주변을 서성였다.

A4용지 20여장이 꽂힌 파일을 쥐고 있던 김보선(남·36) 강서교육청 평생교육체육과 학원지도감독 주무가 똑같은 파일을 가진 강에스더(여·37)씨를 향해 입을 뗐다. “경찰분들 오면 바로 시작하죠. 팀을 나눠서 강 선생님은 24층에서 내려오시고, 저희는 8층에서 올라갈께요.” 이들은 강서교육청 학원단속반원들이다.

지난 11월 23일 밤 서울 양천구 목동일대 오피스텔에서 불법과외단속반원들이 허가를 받지 않고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불법과외를 단속하고 있다.

김 주무관은 파일을 들어보이며 “학원단속보조요원들이 2주간 잠복해서 기록한 표”라고 했다. 불법과외로 유명한 주요 오피스텔에서 오후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관찰한 내용이다. “진짜로 그 집에 사는 학생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불법과외를 받는 학생입니다.”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는 지난 7월 전국 60개 교육청에 학원단속보조요원 201명을 투입했다. 서울 11개 교육청에선 54명이 활동 중이다.

교과부는 지난 7월 '사교육비경감대책'의 일환으로 '학원 운영의 투명성 강화방안' 로드맵을 내놨다. 이후 지역교육청에선 미신고 불법 학원, 교습소, 과외 현장을 본격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지난 20일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에 불법고액과외 단속을 강력히 지시했다.

잠시 후, 베이지색 잠바와 밤색 패딩 잠바와 입은 양천경찰서 지능팀 소속 위달량(46), 박성렬(37) 수사관이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다. 양천서 지능팀은 한달에 1~2번 꼴로 강서교육청과 합동단속반을 꾸린다. 박 형사는 “교육청 공무원은 수사권이 없어 단속을 할 때 ‘험한 꼴’을 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은 짧은 인사를 하고 4, 5명으로 팀을 나눠 흩어졌다.

H타워는 24층 620세대 규모의 오피스텔이다. 이 건물 3층부터 7층까지는 업무용으로 교습소를 차릴 수 있지만, 8층부터는 주거용이다. 단속반원들은 8층에서 24층까지 난립한 불법 과외 현장을 찾아낸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목동지역 업무용 오피스텔의 평균 월세가 100만원 정도라면, 주거용은 그 절반 이하여서 등록없이 과외를 하는 선생님이 많다”고 했다. 오피스텔 과외방은 사교육 열기가 뜨거운 지역마다 있다. 목동 H타워, 중계동 D오피스텔, 도곡동 타워팰리스 근처 오피스텔 등지에서 성행한다.

이날은 교과부 평생교육직업국 학원상황팀원 셋도 합류했다. 김철운(57) 학원상황팀장은 “올해 들어 H타워에만 세번째 나왔다”고 했다. 강에스더씨가 말했다. “저는 2003년부터 단속을 했는데, 이 건물에 올 때마다 3~4건을 단속해요. 그런데도 안 없어져요. 독버섯처럼 계속 생겨요.”

통계청은 지난해 사교육시장 규모를 20조9095억원으로 추산했다. 이 중 개인과외시장은 5조519억원대에 이른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2008 사교육 공급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개인과외 교습자는 21만명으로 추정된다. 지난 6월말 기준 교육청에 신고된 개인과외 교습자는 6만4732명.

김 팀장은 “목록을 보고 찾아가 벨을 누른 뒤, 인기척이 없으면 우유 구멍을 들여다봐서 불이 꺼졌는지 켜졌는지 확인한다”고 했다. 안에서 불법 과외를 하고 있어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끝이다. “사생활침해에 과잉수사라고 우기면, 할 말이 없어요. 결국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따금 철문 한 가운데에 ‘불법 개인과외 금지 게시문’이 붙어 있었다. 지난달 30일에 적발된 곳들이다. 바로 옆 교습소 간판을 달고 있는 곳도 ‘보조요원의 목격 기록’이 없으면 지나쳤다.

8시20분, 김 팀장이 ‘○○교육’이라는 간판을 단 13XX호의 벨을 눌렀다. 운동복 바지차림의 남자가 인상을 구기며 나왔다. 66㎡(22평)의 휑한 오피스텔에 문제집 10여권이 꽂힌 책상, 컴퓨터 한 대가 덩그러니 있었다. 헤드셋이 연결된 전화기가 울려댔다.

“4~5년전에 송파에서 과외선생님을 연결해주는 소개업을 했었고 지금은 안해요. 바깥에 간판은 예전에 쓰던거 그냥 달아놓은 거에요. 지금 저를 수사하시는겁니까? 남의 가정집에 누가 제보했나요? 불쾌하니까 이제 나가세요!” 문이 잠겼다. 김 팀장은 “학생과 함께 있는 모습을 포착하지 못하면 단속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 11월 23일 밤 서울 양천구 목동일대 오피스텔에서 단속반원들에게 불법과외를 하다 적발된 가정교사가 과외가 이뤄진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8시25분, 강에스더씨팀이 18층에서 불법개인과외 현장을 적발했다. 18XX호에서 주모(여·43)씨가 중학생 세명을 상대로 수학과외를 하고 있었다. 주씨는 “10월부터 한달에 20만원을 받고 3명만 가르쳤다”고 했다. 주씨가 울먹였다. “저는 나이 때문에 학원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단 말예요.” 박성렬 형사는 “더이상 이곳에서 운영을 하면 안된다”며 “양천경찰서로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이날 단속반은 H타워, 인근 P오피스텔 등을 돌며 31곳의 벨을 눌렀다. 응답을 한 곳은 15곳, 이 중 현장을 적발한 곳은 주씨 오피스텔 1곳이었다. 강서교육청은 이런 식으로 지난 7월 이후 무등록 학원·교습소·과외현장을 돌며 총 104곳을 적발했다.

대학교 재학생을 제외한 모든 과외교습자들은 지역교육청에 신고를 해야한다. 신고를 안하고 가르치는 현장이 적발되면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양천경찰서 신주화(37) 지능팀장은 “지금까지 적발한 곳은 적게는 2만원짜리 웅변교습소도 있었고, 많게는 50만원을 받는 수학교습소도 있었지만 수백·수천만원짜리 고액과외는 없었다”고 했다. 신 팀장은 “이런 식의 단속은 이번 기회에 미신고 영세 교습소들을 제도권 안으로 들여놓는 데에는 의미가 있지, 불법고액과외 단속은 힘든 일”이라고 했다. “고액과외는 보안이 철저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이뤄져요. 제보하는 사람도 없죠, 그렇다고 단속보조요원이 들어가 관찰을 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유한구(45) 연구위원은 "교육청에 신고한 과외교습자들의 평균 연봉은 1200만원 정도"라며 "학원 강사·대학 교수 등이 가르치는 불법고액과외는 아직도 꽁꽁 숨어있다"고 했다.

단속반원들은 오후 9시30분쯤, 목동의 한 고급주상복합아파트로 갔다. 양천서 형사들이 보안요원에게 설명하고 1층 출입문을 어렵사리 열었다. 9시36분, 19층에서 주민 조모(39)씨가 검은 코트와 양복을 입고 복도에 서있는 단속반원들을 보고 소리쳤다.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웃기지도 않네, 교육청이라고요? 우리나라 현실이 아주 코믹하네요! 이런 식으로 남의 집 앞에 서있는데 기분 별로 안좋습니다." 단속반은 고개를 숙이고 거듭 사과했다.

단속은 오후 10시쯤 끝났다. 서윤중(46) 평생교육체육과 지도계장이 말했다. “H타워가 목동 오피스텔 과외방의 상징이 되어버렸죠. 단속이 가장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갈때마다 생기죠. 이젠 사람들이 교육청에서 와도 문만 안열어 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종류도 다양하고 장단점도 제각각! 우리 아인 학원 타입? 과외 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