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현 기노완(宜野彎)시에 있는 후텐마(普天間) 주일 미군 해병대 항공기지 이전 문제가 미·일 동맹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미·일 양국은 자민당 정부 시절인 2006년 5월 양국 주일미군 재편 계획의 하나로 후텐마 기지의 비행장을 2014년까지 오키나와현 나고(名護)시의 슈와브 주일미군 기지 인근 연안으로 옮기기로 합의했다. 또 오키나와현 캠프 코트니에 사령부를 둔 해병 제3 원정대 소속 병력 8000명과 가족 9000여명을 102억7000만 달러를 들여 괌으로 이동시키기로 했다. 이동비용 중 60억9000만달러는 일본이 부담키로 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후텐마 기지의 해외이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오키나와 주민들이 그동안 제기해 온 민원의 주요 대상이었다. 이 기지의 면적은 4.8㎢로, 기노완시 전체면적(19.5㎢)의 25%를 차지한다. 기지 위치도 시 중심부에 있는 데다가, 전장 2746m의 활주로가 있는 까닭에 항공기 이착륙에 따른 소음 피해와 사고에 대한 공포 및 환경 문제 등으로 주민들의 이전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이 기지 때문에 땅을 강제로 수용 당한 개인들은 수십 년간 재산권 행사를 못했고 기노완시는 도시 개발 계획조차 추진하지 못해왔다. 특히 1995년 9월 4일 발생한 미 해병대원 3명의 12세 여자 초등학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 이 기지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당시 주민 8만5000명이 항의 집회를 여는 등 일본 전체가 발칵 뒤집혔으며,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일본 국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듬해 하시모토 류타로 당시 일본 총리가 월터 먼데일 주일 미국 대사와의 면담에서 처음으로 이 기지의 반환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양국은 기지 반환 협상을 계속해오다 10년 만에 합의에 도달했다.

미국 "약속 지켜라" vs 일본 "결론 안 냈다"

문제는 양국 정부의 합의를 오키나와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현 외 국외 이전'을 지난 8·30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의 집권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16일 정부 출범 이후 외교의 기본방침으로 '대등한 미·일 관계'를 공언하며 미국의 기존 합의 준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 관계가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일본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일본이 아니다"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일본을 비판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후텐마 기지 이전은 당초 양국 간 합의한 것이 유일한 방안"이라고 기지 이전 문제를 조기 결론낼 것을 요구했다. 일본 민주당 정부는 이를 협박이라며 반발하면서 자민당 정부에서 이전 대상지를 슈와브 기지로 결정했던 경위에 대한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조기 결론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13일 개최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하토야마 총리 간의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봉합되느냐가 관심의 초점이었지만, 오히려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양국은 정상회담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에 대해 새롭게 설치되는 각료급 회의체에서 가능한 한 조속히 결론을 내겠다고 합의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일 각료급 회의체 발족과 관련 "기존 합의를 이행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백지상태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합의를 관철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하토야마 총리는 바로 다음날(11월 14일) "기존 미·일 합의에 관계없이 백지상태에서 다시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또 "연말까지 기지 이전 문제를 결정하겠다고 미국에 약속한 바가 없다"면서 "내년 1월로 예정된 오키나와현 나고시 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주민 "미국 압력에 굴하지 말라" 결의문 채택

하토야마 총리와 일본 민주당 정부가 후텐마 기지에 대해 이처럼 강력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오키나와현의 여론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류큐신보·마이니치신문의 공동 여론조사(10월 30일~11월 1일) 결과를 보면 총선 전 여론조사 때 55.6%에 머물렀던 후텐마 기지의 현외 이전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69.7%로 14.1%포인트나 높아졌다. 또 총선에서도 후텐마 기지 현외 이전을 주장한 민주당 후보들(지역구 2명, 비례대표 1명)이 모두 당선됐다. 오키나와현 의회 및 지자체장의 80%도 현외 이전을 찬성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7~8일에는 주민 2만여명이 모여 후텐마 기지 현외 이전 집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하토야마 총리와 민주당 정부는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말고, 대등한 협상으로 주민의 소리를 당당히 주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맺겠다는 하토야마 총리의 소신과 민주당 정부의 외교 정책 때문이다. 하토야마 총리와 민주당 정부의 신(新)외교 정책에는 ‘미국 일변도 외교만으로는 중국의 부상(浮上)이라는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질서 변화에서 일본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가 “미국 주도의 세계화 시대는 막을 내리고 다극(多極) 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창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히 일본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오바마 미국 정부가 중국을 G2(주요 2개국)의 반열에 격상시킨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때문에 미국이 중국에 대한 정책을 변화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고 하토야마 총리와 민주당 정부는 인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중국과의 신뢰 구축을 위한 제스처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일본의 이 같은 변화에 대해 켄트 칼더 미국 존스홉킨스대 라이샤워 동아시아연구소장은 “미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기지를 이전할 곳은 슈와브 기지 인근인 헤코노(邊野古)라는 작은 어촌의 앞바다이다. 슈와브는 현재 해병대 기지로서 전차부대와 상륙함(LST) 등의 종합 연습장이다. 미국은 헤노코 마을의 앞 바다를 메우고 슈와브 기지와 한데 묶어 함께 해상복합 군사기지를 건설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새 기지에는 V자형 활주로 2개(길이 1만8600m, 폭 30m)와 항공모함과 핵 잠수함이 기항할 수 있는 군항, 헬기전용 착륙장이 들어설 계획이다. 새 기지가 건설되면 미국으로선 후텐마 기지보다 전력 강화에 더욱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슈와브 기지에서 훈련 중인 해병대를 언제든지 항공기와 함정을 이용해 투입할 수 있는 데다, 해군과 공군의 긴밀한 작전도 가능하다. 때문에 미국으로선 후텐마 기지를 반드시 이곳으로 이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으로선 중국에 대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한다는 입장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하는 데 이 기지가 전략적으로 매우 유용하다는 점도 미국은 간과할 수 없다. 물론 헤코노 주민들을 비롯한 오키나와의 시민단체들은 연일 이곳에서 미군 기지 이전 반대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은 하토야마 총리와 민주당 정부가 오키나와 주민들의 여론을 무기로 후텐마 기지를 현외 또는 국외 이전시킬 경우 주일 미군을 비롯한 아시아 주둔 미군 재편 전략의 기본 틀을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오키나와발 역풍 전국 확산 우려

하토야마 총리가 앞으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미지수이다. 민주당 정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후텐마 기지와 가데나 기지의 통합을,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은 미·일 기존 합의 수용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의 연립 파트너인 사민당은 해외로 이전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인 자민당은 하토야마 총리의 행태에 대해 “미국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미·일 양국은 지난 17일 첫 각료급 회의를 열고 조속히 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데 일단 합의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오키나와 주민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오키나와발 거센 역풍이 전국에 확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반대로 후텐마 기지를 현외, 또는 국외 이전 입장을 계속 주장할 경우, 미·일 동맹 관계는 자칫하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시라이시 다카시 일본 정책연구대학원 부학장은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하는 안보 체제는 동북아 지역 안정의 기반”이라며 “미·일 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동북아 질서의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후텐마 기지 문제는 하토야마 총리와 민주당 정부에는 ‘양날의 칼’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를 일본과의 동맹 관계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보고 있다. 특히 내년은 미·일 상호 안보조약이 개정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오바마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깊숙이 관여해온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패트릭 크로닌 선임 연구원은 “후텐마 기지 문제는 앞으로 미·일 동맹이 21세기에도 지속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열도 남단에 위치한 오키나와(沖繩)섬은 과거 류큐(琉球) 왕국의 땅이다. 중국과 일본의 침입을 교대로 받아오던 류큐 왕국은 1429년 오키나와섬을 중심으로 국가를 세웠다. 중국, 일본, 조선, 동남아 등과 교역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누렸던 류큐 왕국은 1989년 일본에 강제로 병합돼 오키나와현이 됐다. 오키나와현은 오키나와섬을 포함해 159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중 100개는 무인도다. 오키나와현 전체 인구 130만여명 중 88%가 오키나와섬에 산다. 이곳의 토착민인 류큐 민족은 일본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키가 작고 피부가 검다. 오키나와섬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영토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미군과 일본군은 1945년 4월 1일부터 6월 23일까지 83일간 이 섬에서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쳤다.

특히 결사항전을 벌였던 일본군은 주민들에게 자결을 명령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일본군이 준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하거나 가족끼리 서로 죽이는 비극을 겪었다. 또 미군의 공습과 포격으로 상당수 주민들이 희생됐다. 당시 섬 전체 주민 60만여명 중 숨진 사람은 14만여명으로, 일본군 전사자(10만여명)보다 훨씬 많았다. 이후 미국은 이 섬을 점령해오다 1972년 일본에 반환했다. 이처럼 기구한 역사와 쓰라린 경험 때문에 주민들의 몸에는 반일ㆍ반미 정서가 배어있다.

오키나와섬은 미국의 거대한 ‘불침(不沈) 항공모함’이나 마찬가지이다. 주일 미군 4만7000여명 가운데 2만5000여명, 주일 미군의 각종 군사 시설 중 75%가 이곳에 집중돼 있다. 면적 1434㎢, 길이 108㎞, 너비 3~26㎞인 오키나와 섬의 20%가 미군을 위한 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오키나와는 도쿄보다 서울과 타이베이에 가깝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을 모두 견제할 수 있는 전략 요충지이다. 미군 기지들 중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와 후텐마 기지가 핵심이다. 가데나 기지는 동북아 최대 미군 공군기지이다. 가데나 기지에는 미국 최신예 전투기 F`-`22를 비롯해 120여대의 각종 항공기가 상시 대기하고 있다. 이곳에 주둔한 미 공군은 한반도를 비롯해 동북아 주요 지역에서 군사적 상황이 벌어졌을 때 2시간 내에 투입이 가능하다. 또 후텐마 기지는 해병 제3원정대를 신속히 이동시킬 수 있다. 해병 제 3원정대는 미국이 자랑하는 최정예 지상 전투병력이다. 때문에 오키나와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북아 군사거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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