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4년제 대학 4학년인 박호민(26)씨는 다음 달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박씨는 지난 2006년 한해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받았고, 지난 해에도 1년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을 하며 영어를 배웠다. 거의 격년마다 1년 기간의 해외연수를 떠나는 셈이다.

박씨가 어학연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영어실력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려는 목적이 우선이다. 영국연수 시절 그는 6개월간 홈스테이를 하다가 혼자 살기 위해 이사를 했다. 이사 첫날, 그는 짐을 풀고 학원에 가기 위해 길거리에서 영국인에게 길을 물었다. 영국인의 설명은 친절했지만, 1시간 뒤 박씨가 찾아간 곳은 도시 외곽의 한적한 농촌마을이었다. “제 기억엔 분명 도로, 건물 이름을 다 말해주었던거 같아요. 그걸 그 영국인이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는 거죠.”

한 해 우리나라에서 수만 명이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고 있다. 지난해 해외로 나간 한국인 성인 유학생은 모두 21만6867명(4월 기준, 교육과학기술부)이고, 이 가운데 약 9만 명 정도가 어학연수생이었다. 또 온라인 채용업체 잡코리아가 지난 9월 직장인 42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서도 약 45.3%가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고 답했다.

취업은 어학연수의 가장 큰 동기. 올해 입사면접 경험이 있는 구직자 4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4.2%가 ‘면접 때 영어인터뷰를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영어 인터뷰에 가장 큰 도움이 된 학습법으로는 조사대상자 중 가장 많은 31.7%가 ‘해외 어학연수’를 꼽았다. 취업을 위해서는 영어 실력이 필요하고,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학연수를 능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어학연수 경험이 있는 박씨의 생각은 달랐다. 박씨는 지금도 "토익점수는 올랐지만, 영어에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학창 시절 '우등생' 소리도 들었고, 대학에서 학점도 높은 그였다. "영어공부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체 진단이다.

실제로 박씨는 어학연수 시절, '고시생' 같은 생활을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아침운동 후, 라디오를 들으며 학원에 갔다. 학원 수업이 끝나는 오후 4시부터는 근처에 있는 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날 배운 내용을 정리했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 후, 영국 BBC뉴스와 드라마를 보며 듣기공부를 했고, 잠들기 전 직접 만든 단어장을 읽어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수면시간은 하루 5~6시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게 제대로 어학을 공부하는 방법일까? 영국 본머스로 어학연수를 다녀 온 후 현재 외국계 홍보회사에 입사한 김경화(26)씨는 "도서관에서 문법책을 펴고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동양인 10명 중 8명은 한국학생이었다"며 "그런 방식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외국에서까지 굳이 그렇게 공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박씨도 "한국식 공부방법이 영어학습에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학연수를 떠난 한국인들이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함께 모이는 것도 어학연수가 실패로 끝나는 대표적인 길이다. 박씨도 처음에 영국에 갔을 때, 한국인들과의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타지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향수병은 애초 결심을 흔들어 놓았다. 매 주말마다 자신의 숙소에서 한국인들만의 파티를 열었고, 각종 술자리와 여행을 따라다니다가 100%를 자랑하던 출석률은 6개월 후 60%대로 떨어졌다.

이러한 생활이 때로는 조기 귀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학생 이수정(24)씨도 처음 미국 뉴욕에 있는 어학원에 간 첫 날부터 한국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한국사람과 어울릴 바에는 차라리 혼자 지내자'라는 결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늘지 않는 영어로 외국인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고, 멀리했던 한국 사람들이 끼리끼리 노는 모습을 보면서, 급기야 약간의 우울증 증세까지 보인 이씨는 4개월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씨는 “돌이켜보면 그렇게 돈을 써가면서 해외에 나갔는데 지금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니 참 한심해요”라고 말했다. 현재 이씨는 강남의 한 어학원 회화수업을 수강하며,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이씨는 또 같은 어학원에 있던 한국인 약 20명 중, 이씨를 포함한 6명이 조기에 귀국하거나 학교에 나가지 않고 여행만 하다가 귀국했다고 전했다.

[한국인 모두가 영어를 잘해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