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미 상반기에 국내외 기업의 세종시 유치를 위해 삼성그룹, 세계 10대 병원그룹인 파크웨이그룹, 호주 최대 투자기업인 맥쿼리그룹 등을 만나 투자 유치를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비싼 토지가격 때문에 기업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에 따라 토지를 기업에 장기임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15일 본지가 입수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내부 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올 초부터 삼성(3월), 파크웨이그룹(1월·4월), 보스턴대학(4월), 맥쿼리그룹(6월) 등 국내외 유수의 기업과 병원, 대학 등 10여곳을 직접 방문하거나 국내로 초청해 세종시 투자 협의를 벌였다. 이에 따라 정부가 세종시 수정 문제를 본격 제기하기 전에 이미 기업유치 작업이 상당 부분 진척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운찬 총리는 17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등 재계 총수를 만나 간담회를 갖기로 해 결과가 주목된다. 롯데그룹은 맥주 공장 등을 세종시에 설립하는 등 롯데그룹 계열사 중 일부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올 상반기 삼성 외에도 국가공인 품질인증업무를 담당하는 한국품질재단을 방문한 것을 비롯해, 삼진엘앤디(매출 1000억대, LCD 부품제조업체), 동양E&P(매출 2400억원대, 휴대폰 충전기업체), 주성엔지니어링(매출 1000억원대, 반도체·LCD부품업체) 등 첨단 부품 기업을 만나 공장설립 등을 요청했다. 정부는 서울대KAIST도 올해 초(3월) 이미 직접 만나 유치 방안을 사전 협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국내 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대학과도 수차례에 걸쳐 비공개 투자 유치 설명회를 가졌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지난 2월 미국 보스턴에서 투자 유치 설명회를 열었고, 6월에는 보스턴대학을 직접 방문해 대학 및 병원 유치를 협의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세계 10대 병원그룹으로 아시아에 20여개 의료시설을 운영 중인 싱가포르계 파크웨이그룹과도 2차례에 걸쳐 세종시 투자를 요청했다. 정부는 EU상공회의소와 아부다비경제사절단, 맥쿼리그룹 등과도 만나 투자 유치 여부를 타진했다. 맥쿼리 그룹은 호주 최대 금융투자회사로 전 세계 약 30개국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세종시에 '천연약재박물관' 설치를 위한 MOU(양해각서)도 5월에 체결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미 세종시 계획 수정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과 투자 유치를 상당 부분 진척시킨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기업 투자에 상당한 진척이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권태신 국무총리실장도 “3~4개 기업과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에는 세종시의 기능 변경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세종시의 자족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외 기업과 투자 유치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회장단 회의를 가진 뒤, 정운찬 총리를 초청해 간담회를 갖는다고 15일 밝혔다. 전경련 관계자는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문제, 정부가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 등 기업 활동과 관련이 많은 최근 경제 분야 현안에 대해 총리와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총리가 세종시 수정문제를 정부 당국자로 처음 제기한 데다, 정부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통로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 자리에서도 세종시 문제가 주요 의제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간담회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주재하며, 조석래 전경련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 부회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한편 롯데그룹은 세종시 등에 맥주 공장을 짓는 방식으로 맥주사업 진출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15일 “국내에 직접 공장을 짓는다는 원칙하에 맥주사업 진출을 추진 중”이라며 “세종시를 포함해 10여곳을 대상으로 맥주공장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은 지난 5월 미국계 사모펀드 KKR에 밀려 오비맥주 인수에 실패한 이후 롯데칠성을 중심으로 맥주사업 진출을 준비해왔으며, 지난 9월 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맥주 제조 면허 기준을 대폭 완화하겠다고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맥주공장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측은 “계열사들 중 세종시에 옮길 수 있는 곳이 있는지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