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허리를 굽힌 채 2~3분을 유리잔 하나에만 매달려 있었다. 백화점 지하를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의 폭소, 코 앞에서 햄버거를 베어문 중학생의 으적거림도 안중에 없었다. 그가 완성된 무알콜 모히토를 내놓으며 상체를 세우자 189cm라는 키에 쓴 주방장 모자의 끝은 천장에 닿을 것 같았다.
쉐프 최현석. 압구정동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3년 동안 400개가 넘는 새로운 메뉴를 선보여 포털사이트에 전용 카페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높던 그를 강남의 한 백화점 지하 햄버거 가게에서 만날 수 있었다. 30㎡ 남짓한 매장은 주방과 거기에 붙은 바(bar)의 자리 10여석이 전부였다.
◆ 요리하는 남자에게 햄버거라니
“처음에는 펄쩍 뛰었죠. 요리하는, 나름 예술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에게 햄버거 가게를 하라니... 사실 길거리 음식이잖아요?”
3년 간 일하던 곳에서 나와 자신의 레스토랑 사업을 준비하던 최현석에게 백화점 측의 ‘수제 햄버거집’ 제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세계 유명 요리사들도 햄버거 브랜드를 만든 경우가 있고, 자신의 음식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맛보게 할 욕심에 곧 시내 유명 햄버거 가게들을 섭렵했다.
최 쉐프는 “사실 이탈리안 요리는 아무리 싸도 기본 가격이 있잖아요? 누구나 부담없이 먹기는 어렵죠”라며 “그에 비하면 햄버거는 훨씬 대중적일 수 있어 결심했죠”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의 햄버거는 ‘햄버거 값’이 아니다. 7800원에서 9600원 선. 익숙한 패스트푸드 햄버거의 두 배가 넘고 한식 백반보다도 비싸다. 메뉴마저 낯설다. 오리엔탈 크림과 취나물을 곁들인 버거, 매콤한 고추젤리를 곁들인 버거정말 이 정체불명의 비싼 ‘햄버거’를 사먹어야 할까?
“햄버거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일 수도 있어요. S라인 댄스가수에게 박사학위가 필요 있냐는...좋은 재료로 맛있게 만들면 그만큼 비싸질 수 있는 거잖아요.” 약간 올라갔던 그의 목소리는 이내 차분해졌다. “저를 아는 분들은 기대를 하세요. ‘최현석이가 만들면, 햄버거라도 뭔가 다를 거야’라고. 거기 맞춰가야 하는 면도 있어요.” 그가 햄버거 가게에서 모히토 칵테일을 파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 우슈를 하던 손에 쥔 젓가락
최현석 쉐프를 알게된 사람들은 그의 부모와 형이 모두 요리사라는 사실에 그를 ‘요리계의 엄친아’로 단정짓는다. 하지만 최현석은 세계 3대 요리학교는 물론 국내대학 졸업장도 없다. 최종 학력은 고졸, 본인 표현대로 ‘순수 조선파’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삼수를 하면서 최현석은 중국 무술인 우슈의 사범을 꿈꿨다. 최소 1년이 걸린다는 1단을 6개월 만에 땄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스스로도 놀랐어요. ‘우슈 천재’라는 생각도 했었으니까요”라는 그는 “하지만 단이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더라구요. 승급 심사비도 비싸지고...”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대학 진학과 운동을 함께 접은 최현석은 군대에 갔다. 그리고 제대 후 ‘딱히 마땅히 일이 없어’ 당시 국내에서 손꼽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쿠치나’의 주방에 들어갔다.
“칼질도 제대로 할 줄 몰랐어요. 첫날 종이를 길게 죽죽 찢어주면서 젓가락으로 옮기는 연습을 하라는 거에요. 젓가락질 못 하면 식당에서 살아남기 어렵다고... 파스타를 삶을 때도 젓가락을 쓰니까요.”
2000년대 초반 이 레스토랑의 백화점 지점을 맡으면서 최현석의 시대가 시작됐다. 본점이 짜놓은 식단에 ‘오늘의 파스타’라는 이름으로 본인이 개발한 아이템을 하나씩 끼어 넣어 손님들에게 선보인 것이다. 몇년 전 국내 미식가들을 열광시켰던 ‘냉(冷) 파스타’도 당시 ‘오늘의 파스타’로 등장했다.
“고정관념을 깨 본 거죠, 왜 파스타는 뜨거워야만 하나냉면, 소바, 냉우동 다 있잖아요? 국내 처음인지는 모르지만, 반응은 확실히 좋았죠.”
자신이 개발한 메뉴 이야기에 최현석의 얼굴은 눈웃음으로 주름이 두셋 늘어났다. 그리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제가 만든 ‘두부김치’ 드셔 보셨어요?”라고 물어왔다.
“김치 특유의 아삭함이 있잖아요? 그런 게 서양 음식에는 없어요. 그래서 고민을 시작했죠.” 그는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닌 듯 말을 이었다. “앤다이브를 배추처럼 절이고 토마토, 산딸기 퓨레로 양념을 했죠. 두부는 모짜렐라 치즈로 대신했구요. 겉보기는 완전 김치지만, 맛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르죠.”
◆ 아이들과 요리가 즐겨... 만든 찜닭은 못 먹고 버리기도
최현석 쉐프는 9살, 11살 두 딸과 함께 하는 요리가 즐겁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참 좋아해요. 양파 껍질도 잘 까고어렸을 때는 피자 같은 것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요새는 제가 해 주는 게 더 맛있는 것을 알죠”라고 흐뭇해했다. 하지만 이러한 최현석도 ‘찜닭’에서는 큰 좌절을 겪었다.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은 없었는데, 애들이 먹고 싶다기에 해 봤죠. 근데 애들이 안 먹는 거에요? 그래서 직접 한 입 먹어 봤어요... 그냥 버렸죠.”
‘무슨 스타쉐프가 그러냐’고 실망스럽다는 말에 그는 반문했다. “스타쉐프는 무슨...스타쉐프면 제가 가스차 타겠어요? 기름 넣고 다니지.”
3년 동안 압구정을 주름잡았다는 스타 요리사가 아직도 LPG차를 탄다는 것이다. 의미를 되묻자 최현석 쉐프는 진지하게 물어왔다. “저 같은, 나름 알려진 압구정이나 청담 주방장들이 어느 정도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세요? 연봉 말이예요, 연봉”
‘햄버거 가게에서 영그는 토종 스타쉐프(Star Chef)의 꿈 (下)’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