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4일 태국에서 "아직 북한의 의도가 불투명하며 핵을 포기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는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막후에서 논의했던 남북 정상회담이 일단 무산됐음을 시인하면서 배경을 설명하는 말로 들렸다.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북한 핵문제를 의제로 삼겠다고 밝혀왔다. 물론 '거론'이나 '촉구'만으론 부족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떤 대답을 얻어낼지 사전에 계산이 서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핵 포기 결단을 내린다 한들, 그것을 미국 대통령이 아닌 한국 대통령에게 먼저 약속하려 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미국과의 '핵무기 상호감축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말이 안 되지만 그만큼 협상의 출발점을 높게 제시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는 물론, 휴전협정을 대체할 평화조약 체결, 주한미군 철수 등 여러 조건을 내걸 것이다. 미국도 북한 인권 개선 등 다른 의제들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이고, 일본의 피랍자 문제도 남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그랜드 바겐'(일괄타결) 원칙에 북한과 미국이 동의한다고 해도, 그 구체적 합의사항과 시간표를 만들기까지는 또 상당한 난관과 시간을 거쳐야 한다. 가령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수교할 수 있다"고 하지만, 북한은 핵 포기를 맨 마지막 순서로 미루려 할 것이 틀림없다.
북한이 지난 16년간 핵을 놓고 미국과 씨름하면서 터득한 게 몇 가지 있을 것이다. 우선 미국과 한국이 군사적 방안을 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마도 1994년 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준비했던 북한 핵시설 폭격(surgical strike) 방안은 전면전으로의 확전 위험성이 가장 낮은 상태에서 북한의 핵개발 의지를 꺾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을 것이다(공교롭게도 당시는 김일성 사망 직전이었다). 북한은 또, 국제 압력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강화되면 언제든지 대화 테이블에 복귀하는 것으로 그 압력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급해지면 '핵활동 동결과 사찰 재개' 같은 해묵은 합의를 재탕해 낼 수도 있다. 게다가 김정일 정권은 국제 제재로 인한 인민들의 고통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므로 오래 더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오히려 남한과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 주민들을 걱정하며 '인도주의적 지원'을 거론한다.
북한의 이런 생각을 미국과 중국 한국 등이 협력하여 깨지 못하는 한, 북핵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북한이 두 차례나 핵실험을 했지만 아직 실제 무기화(化)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을 것이란 희망적 분석도 없진 않다. 그러나 오류의 위험성이 있을뿐더러 사실이라 해도 무기화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북한이 말하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의 시간표는 우리에게 북핵 해결의 마감시간이 되어야 한다. 한국이 절대로 핵을 가진 북한 아래 굴종의 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미국과 중국에 대해 '2012년까지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한국도 제3의 선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시한을 요구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한국의 독자적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포함하는 이야기로, 결코 쉽지는 않은 길이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서 언제든지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고, 미국은 우리의 방위동맹국일 뿐 아니라 원자력발전에 핵연료를 공급하고 있다. 우리가 꼼짝해볼 여지는 거의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미국과 중국을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군사적 방안을 포기했으면 제재와 협상을 전쟁하듯 비상한 각오로 추진해야 할 텐데, 미국은 결정적 수단이 없고, 한반도의 안정을 바라는 중국은 스스로 북한에 발목이 잡혀 있다. 한국이 새 돌파구를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