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T―뉴스 백지은 기자] 브라운관이 솔직을 넘어 대담해졌다. 뽀뽀가 아닌 실제 키스 장면에, 농염한 베드신이 여과없이 등장하는 TV 속 드라마는 가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자극적 소재로 점철된 TV 화면은 이제 시청자 등급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 노골적 막장 드라마 홍수

최근 KBS 2TV 수목드라마 '아이리스'는 파격적인 애정신으로 며칠 내내 화제를 모았다. 이병헌과 김태희가 입을 통해 진짜로 사탕을 나눠 먹는 '사탕 키스'는 방송 후, "진짜 서로 입으로 받아먹은 것이냐" "불결하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또 등급 보류 판정을 받았다는 베드신을 방송 직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가 하면, "같이 샤워할까?" "속옷 가져왔어?" 등 김태희와 이병헌의 노골적인 대사로 시청자들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이번 애정신은 시청률 상승세에 톡톡히 한몫했지만 시청자들의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리스'뿐만 아니라 SBS 수목드라마 '미남이시네요'의 장근석과 유이,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의 정윤호 아라 등도 여지없이 경쟁이라도 하듯 키스신을 내보냈다.

자극적인 애정신 외에 막장 소재 또한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요소다. 불륜이 빠질 수 없는 드라마 코드가 되어버린 요즘 본부인과 불륜녀의 육탄전, 불륜 사실을 들키고도 오히려 뻔뻔한 남편 등이 안나오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 특히 SBS 월화드라마 '천사의 유혹'은 허니문에서 남편 몰래 불륜남과 침실에서 진한 베드신을 벌여 시청자를 경악케했다.

▶ 시청자ㆍ방송심의위원회 "막장 제동 걸 것" vs 제작진 "드라마 장르일 뿐"

'천사의 유혹'과 MBC 일일드라마 '밥줘' 등 논란의 대상인 드라마들은 대부분 온 가족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오후 8~9시에 방송된다. 이 드라마들의 시청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 하지만 시청등급이 무색한 막장 경쟁에 시청자들은 해당 방송사와 방송심의위원회 게시판에 항의의 글을 올리고 있다. 이에 방송심의위원회는 가장 많은 지적을 받고 있는 '천사의 유혹'과 '밥줘' 등에 대해 안건상정을 진행했다. 방송심의위원회 측 관계자는 T-뉴스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현재 이 드라마들의 비정상적인 상황 설정과 수위 높은 애정신 등에 대해 안건상정 중"이라면서 "현재 협의 중이기 때문에 정확한 결과를 말할 순 없지만 수위에 따라 시청자 사과, 경고, 주의, 제작 관계자 징계 등의 제제조치가 가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드라마 측 관계자들은 막장 논란에 대해 '말도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천사의 유혹' 측 관계자는 T-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어떤 한 부분만을 보고 막장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스토리를 봐줬으면 한다. 논란이 되는 '허니문 불륜신' 같은 경우도 본래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복수를 위해 결혼을 선택한 여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과 만난 것이라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전개다. 드라마는 보고 재밌으라고 만드는 것이고 장르에 따라 극성은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 막장을 빼면 재미도 없나?

최근 드라마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를 그린 것에 대해 한 문화평론가는 "요즘 작가들은 취재하지 않고, 몇몇 소설이나 공상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쓰는 것 같다"고 호되게 비판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뭘까? 가장 큰 원인은 '노이즈 마케팅'이다. 초대형 스타를 캐스팅하지 않아도 논란이 되면 관심을 모을 수 있고 '욕하면서도 보는 사태'가 발생해 시청률은 동반 상승한다. 두번째 원인은 '베버의 법칙'. 처음 자극이 약하면 조금만 센 자극을 줘도 반응하지만 처음 자극이 강하면 몇 배 더 강한 자극에만 반응을 한다는 것. 이미 자극적인 소재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더 센 자극을 찾게 마련이다.

마지막은 '모험 정신이 없는 제작진의 태도'다. 최근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유심히 살펴보면 막장으로 히트를 쳤던 작가들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히트 작가들은 고정팬을 보유하고 있어 프로그램 제작시 시청률 위험부담이 적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다.

'막장'을 빼면 길은 없는걸까? 최근 선정적 소재와 막장 스토리 없이도 시청률 40%를 넘긴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이나 최근 종영한 KBS 2TV 주말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은 훈훈한 가족적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 구성, 출연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에 힘입어 시청률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막장과 선정에 지친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것.

TV시청을 민망하게 만드는 자극적인 소재의 드라마들이 시청률에 급급하는 동안 시청자는 지쳐가고 있다. 과감해진 TV, 이제는 솔직과 내숭의 '중용의 미'를 찾을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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