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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에 앉아 역 안팎의 동정을 살필 때부터 안중근이 고심한 것은 언제 이등박문을 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아침 아홉시에 이등박문이 온다는 것뿐, 그날 하얼빈 역두에서의 환영행사가 어떤 절차로 어떤 식순(式順)에 의해 거행될 것인지는 전혀 알려진 게 없었다. 그러다가 열차가 들어오면서 안중근은 은근히 다급해져 이등박문이 가장 정확하게 가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자신을 노출하기만을 기다렸다.

기차가 서자 가장 많이 술렁거린 것은 러시아 의장병들 왼편에 몰려서 있던 러시아 재무장관을 비롯해 이등박문을 환영하러 나온 외국 문관들이 모여선 곳이었다. 안중근은 환영 인파 속에 섞여 도열해 선 러시아 의장대 뒤로 외국 문관들이 모여선 곳으로 갔다. 그때 키가 크고 풍채가 좋은 러시아 관리 하나가 몇몇 수행원을 데리고 방금 선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가 이등박문을 맞으러 열차에 오른 것이었다.

코코프체프는 객차 안에서 환영인사와 간단한 예비회담을 겸해 이등박문과 20분 정도 환담을 나누었다. 그러나 긴장과 흥분으로 점차 몽환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안중근에게는 그 20분이 무한처럼 느껴졌다. 나라와 겨레를 위해 제거해야 할 거대한 악이, 생명을 거두어줌으로써 더는 악을 행할 기회를 잃게 하여 구원해 주어야 할 타락한 영혼이, 몇십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그 기차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수무책 그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데서 몇 배나 더해진 조급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군악 소리와 함께 구령이 울리고 안중근 앞쪽에 도열해 섰던 러시아 의장병들이 '받들어 총' 자세로 경의를 표했다. 이어 한층 크고 높아진 군악대 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지면서 얼마 전 러시아 재무장관 일행이 올라탔던 객차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내렸다. 객차에 올랐던 러시아 관리들 외에 대여섯 명의 일본인들이 따라 내리는 게 이등박문도 그 속에 있는 듯했다.

일러스트=김지혁

고막을 찢는 듯한 군악대 소리에 퍼뜩 정신이 든 안중근은 그 일본인들을 살펴보았다. 얼굴을 본 적이 없어 아직은 누군지 알 수 없었으나, 그들 가운데 이등박문이 있으리라는 짐작이 들자 이내 가슴이 터질 듯한 분노와 함께 삼천 길 업화(業火)가 머릿속에서 치솟는 듯했다.

'어째서 세상일이 이리 공평하지 못한가. 슬프도다. 이웃나라를 강제로 빼앗고 사람의 목숨을 참혹하게 해치는 자는 이같이 날뛰고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대신, 죄 없이 어질고 약한 인종은 어찌하여 이처럼 곤경에 빠져야 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자 안중근은 더 참을 수 없었다. 환영 인파 사이에서 몸을 빼내 외국 사절들과 문관들이 모여선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러시아 재무장관을 비롯한 관리들의 안내를 받은 일본인 고관들은 외국 사절들과 문관들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들과 악수하고 러시아 의장대 앞으로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맨 앞에는 누런 얼굴에 휜 수염을 기른 늙은이 하나가 하늘과 땅 사이를 홀로 휘젓고 다닌다는 느낌을 줄 만큼 오만하고 도도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저것이 필시 늙은 도둑 이등박문일 것이다!"

그렇게 헤아린 안중근은 곧 러시아 의장병 뒷줄로 다가가 병사들 사이를 헤집고 그 늙은이를 향해 세발을 쏘았다. 단총으로 맞히기에는 좀 먼 열 발자국 정도 거리였으나, 그동안 익힌 감각으로는 어지간히 맞힌 듯했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그 늙은이도 쓰러지지 않고, 군악 소리에 총소리가 묻힌 탓인지 요란한 환영행사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안중근은 일시 낭패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그 늙은이를 맞히었다 해도 그게 이등박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안중근을 다급하게 했다. 그 바람에 안중근은 다시 단총을 들어 그 늙은이 곁에 선 세 일본인에게도 한발씩 쏘았다. 그러고 나니 그제야 처음 안중근이 세발을 쏜 늙은이가 쓰러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이어 뒤늦게 총을 맞은 세 사람도 잇달아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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