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예일대, 그리고 동국대.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세 단어를 한꺼번에 입력한 후 엔터(Enter) 키를 누르면 흥미로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검색되는 뉴스의 대부분이 지난 2007년 7월을 전후한 시점에 집중돼 있는 것. 보도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핵심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신정아씨는 2005년 예일대 미술사 박사학위를 동국대에 제출하고 그해 9월 미술사학과 조교수가 됐다. 2007년 신씨의 학위 위조 의혹이 불거지자 동국대는 예일대로부터 받았다는 학위증명 확인 팩스를 채용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예일대는 그해 7월 동국대로부터 학위 확인요청 편지를 받은 적이 없으며 동국대가 제시하는 팩스는 위조된 가짜라고 발표했다.’

사실 이 정도 뉴스는 평범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상식’이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신정아 스캔들’의 핵심이 다름아닌 학위 위조였고, 그 여파로 적지 않은 가짜 학위 소지자들이 줄줄이 ‘고해성사’에 나섰으며, 급기야는 한국사회의 학벌만능주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상황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면 상당수가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그러게…. 그때 그 일 어떻게 됐지?’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동국대 캠퍼스.

지난해 3월 24일 동국대는 예일대를 상대로 5000만달러(약 582억원·10월 14일 현재 환율 기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미국 코네티컷주 지방법원에 제기했다. 소송의 근거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중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묵시적 계약 위반·명예훼손 등이었다. 소장이 접수되자 예일대는 즉각 반격에 나섰다. 동국대가 제기한 소송과 관련, 그해 5월 28일과 6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법원에 공판 전 사실발견절차(pre-trial discovery· 서면이나 증인심문(deposition)을 통해 피고와 원고 간 분쟁사항을 명확히 하는 단계) 중지와 소송 기각(reject)을 각각 요청한 것. 편지로, 이메일로, 신문지상으로 번지던 두 대학의 싸움이 법정으로까지 비화되는 순간이었다. 2007년부터 2년여간 두 대학 사이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5년 동국대는 미술학부의 규모를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특별 채용방식으로 신규 교수를 뽑는 데 합의했다. 그해 8월 4일 신정아씨가 자신의 경력 및 학력 증명서를 동국대에 제출했다. ‘2005년 5월 예일대 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증명서 하단엔 예일대 대학원 파멜라 슈마이스터 부원장의 서명이 기재돼 있었다. 8월 12일 동국대 교원인사위원회는 신씨를 미술사학과 조교수로 임용하는 데 동의했다.

신씨는 이사회 승인을 거쳐 9월 1일 교수로 공식 채용됐다. 그로부터 며칠 후 동국대는 모처로부터 ‘신씨의 학위가 의심스럽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9월 6일 신씨가 제출한 학위증명서를 포함, 학위 확인을 요청하는 등기우편을 예일대로 발송했다. 회신은 9월 22일 팩스로 도착했다. 발송자는 신씨의 학력 증명서에 서명한 슈마이스터 부원장. 신씨의 박사학위 및 학위증명서에 기재된 서명이 본인의 것임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총 3장이었다. 동국대는 이 팩스를 근거로 신씨의 박사학위에 대한 검증이 완료됐다고 판단, 논란을 일단 잠재웠다.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 캠퍼스.

2007년 6월 4일 조의연 동국대 경영관리실장은 학내 모 교수로부터 “신씨의 박사학위 논문은 표절된 것”이란 제보를 받았다. 6월 7일 조 실장은 예일대 도서관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신씨의 박사학위 논문 보유 여부를 문의했고 이튿날 “우리에겐 신씨 논문 기록이 없으니 미술사학과에서 재확인하라”는 답변을 얻었다. 6월 11일 예일대 미술사학과에 같은 내용을 문의했으나 미술사학과 관계자 역시 이메일 답변을 통해 신씨의 학위 수여기록이 없다고 알려왔다.

그 시기를 전후해 국내 언론이 신씨의 박사학위와 논문에 대한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동국대는 7월 2일 기자회견을 자청, “신씨의 교수 채용은 학내 학위 확인 절차에 따라 예일대로부터 학위를 검증 받은 후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7월 5일 리처드 레빈 예일대 총장을 대상으로 신씨의 학위와 (슈마이스터 부총장 명의로 2005년 9월 22일에 도착한) 팩스의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편지를 발송했다. 7월 6일엔 우편물과 별도로 슈마이스터 부총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팩스 내용과 예일대 미술사학과의 확인내용이 다른 이유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슈마이스터 부원장은 이메일에 회신하지 않았고 2009년 10월 현재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동국대의 문의에 대한 예일대 측 답변이 도착한 건 7월 10일이었다. 수전 카니 예일대 부총장실 법무실장 명의로 된 이 편지에서 그는 “신씨의 예일대 박사학위 수여 기록은 존재하지 않으며, 9월 22일 팩스는 위조된 가짜”라며 “동국대가 예일대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는 확인서와 팩스 표지가 예일대 양식과 달라 팩스 발송과 관련, 동국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예일대의 이런 의견은 이후 몇몇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반복, 소개됐다.

예일대 관계자의 증언이 관심을 모으며 국내 여론은 점차 ‘교수 임용 대상자의 학위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동국대를 향한 비판 쪽으로 흘러갔다. 동국대가 예일대로부터 받은 증명서를 근거로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7월 13일엔 길라 라인스틴 예일대 대외협력담당 부국장이 한국 언론에 등장했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동국대가 받았다는 예일대의 확인 팩스는 위조된 것이 확실하며 한국 내에서 위조됐을 가능성이 짙다”고 발언했다.

7월 15일 조의연 실장은 다시 수전 카니 실장에게 이메일을 발송, “9월 22일 팩스에 찍혀 있는 번호가 예일대 팩스번호가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날 예일대 측은 “예일대 팩스번호는 맞지만 그마저 위조 가능하니 조사 후 알려주겠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해당 내용에 대한 추가 회신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사이 몇몇 매체가 라인스틴 부국장과 재접촉, 추가 기사를 내놓았다. 매일경제는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는 예일대이며 그에 따른 법적 조치를 고려 중”이라는 라인스틴 부국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7월 18일 예일대 측의 잇단 강경 발언으로 궁지에 몰린 동국대는 학내 학위 검증 절차에 잘못이 있었다고 자체 판단, 담당자들의 문책을 결정했다. 오영교 총장은 신씨 문제와 관련 공식 사과에 나섰다. 19일에도 예일대의 공세는 계속됐다. 라인스틴 부국장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예일대는 (동국대가 보냈다는) 신씨 학위 확인 요청 우편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동국대가 갖고 있는 팩스가 위조된 건 물론이고, 동국대는 처음부터 신씨의 학위 검증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8월 초,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은 신씨의 학위 수여 진위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동국대는 최초의 우편 수령 사실조차 부인하는 예일대에 반박하기 위해 ‘증거 수집’에 나섰다. 발송지인 국내 우체국 등기추적 자료는 유효기간(1년)이 지나 이미 폐기된 상태. 다행히 미국 우편서비스(USPS·US Postal Service)는 모든 등기우편 자료를 2년간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8월 31일, 수소문 끝에 USPS로부터 해당 우편의 예일대 측 수령자가 ‘YCM의 M.Moore’로 기록된 것을 확인했다. 동국대는 이 사실을 즉각 예일대에 알렸다.

같은 날, 카니 실장의 회신 메일이 도착했다. “예일대 직원 중 M.Moore란 직원은 없었으며 YCM은 예일대와 무관한 약자”란 내용이었다. 그러나 조의연 실장은 예일대 웹사이트 등을 검색, YCM이 ‘Yale Central Mailroom’의 약자이며 이곳 직원 중 마이클 무어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내용을 메일로 확인한 카니 실장은 9월 1일 동국대에 “해당 등기우편에 대한 USPS의 실제 영수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했고 이틀 후 동국대는 해당 우편에 붙였던 라벨 사본을 발송했다.

(왼쪽부터) 수전 카니 예일대 부총장실 법무실장의 실수 인정 및 사과 서한(2007. 11. 29), 리처드 레빈 예일대 총장의 사과 서한(2008. 1. 3), ‘예일대의 소송기각 신청을 기각한다’는 내용의 코네티컷 지방법원 통지서(2009. 2. 24).

9월 12일, 조의연 실장은 카니 실장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냈다. “한국 검찰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동안 동국대가 보내준 자료들이 9월 5일 편지 수령 여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됐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예일대 측은 메일에 회신하는 대신 9월 21일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신씨 주장을 뒷받침하는 모든 자료가 가짜”란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 사이 동국대 교수협의회는 이 사건과 관련, 동국대 이사진의 사퇴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검찰은 신씨 학위 확인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시 교수 임용과정에 관여한 동국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참고인 조사에 들어갔다.

10월 11일, 결국 신정아씨는 학위 위조 및 문서 위조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11월 검찰은 신씨 관련 문서 협조를 요청하며 예일대에 소환장을 발부했다. 11월 29일 수전 카니 실장은 돌연 오영교 동국대 총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9월 22일 동국대가 예일대로부터 받은 팩스는 위조가 아닌 진짜였으며 파멜라 슈마이스터 부원장이 ‘바쁜 업무로(in the rush of business)’ 인해 잘못된 확인 팩스를 발송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예일대는 12월 29일엔 공식성명을 통해, 이듬해인 2008년 1월 31일엔 총장명의의 사과 서한을 통해 잘못을 거듭 인정했다.

동국대가 예일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1년 6개월여가 흘렀다. 지난해 8월 28일 도나 마티네즈 코네티컷 지방법원 판사 주재로 양측의 화해 조정을 위한 회의(settlement conference)가 열렸지만 합의 도출엔 실패했다. 소송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11월 24일 마티네즈 판사가 특수이해 관계 등의 이유로 갑자기 판사직을 자진사퇴하며 일정은 더 미뤄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역시 예일대에서 십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 ‘예일맨’이었다.)

결국 올 2월 24일에서야 법원은 사실발견절차 중지 및 소송기각 등 예일대의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기각하며 소송 속개를 명령했다. 동국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올 3월 본격적인 공판 전 사실확인 절차가 개시됐다. 현재는 마지막 단계인 증인심문 절차를 앞두고 있는 상태. 판사의 명령에 의해 오는 10월 30일까지는 양측 모두 증인심문을 끝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일정이 더 늦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국대 측 소송 대리인인 로버트 와이너 변호사(미국 뉴욕 소재 로펌 McDermott Will & Emory·MWE 소속)는 “증인심문 절차가 마무리되면 윤곽이 잡히겠지만 미국 법제도의 특성상 수년에 걸친 지루한 소송이 될 수 있다”면서도 소송 전반에 걸쳐 자신감을 드러냈다. 특히 예일대가 △2005년 9월 22일 팩스를 통해 신씨 학위를 잘못 검증해준 점 △본인들의 검증상 오류를 부정한 점 △동국대의 학위 검증 요청 우편 수령 사실과 예일대의 팩스 전송 사실을 부인한 점 △정확한 자체조사 대신 한국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한 점 등은 단순한 행정적 오류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즉 예일대는 ‘신정아 스캔들’이 동국대 입장에서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사안임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한국 검찰로부터 소환장을 받기 전까지 이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에 관한 예일대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이메일 인터뷰를 시도했다. △두 대학의 갈등이 소송으로까지 번지게 된 배경 △신정아 사건 이후 자체 학위 검증 시스템의 변화 유무 △동국대가 제시한 손해배상금액 5000만달러의 적정성 여부 △코네티컷 지방법원이 예일대의 사실확인절차 중지 요구와 소송 기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에 대한 예일대 측 입장 △소송 결과에 대한 예일대의 예상 시나리오 등 5개의 질문지를 작성해 지난 10월 12일 리처드 레빈 총장과 파멜라 슈마이스터 부총장, 수전 카니 법무실장 등 예일대 쪽 관계자 5명에게 전송했다.

이틀 후인 14일, 답장이 왔다. ‘Yale’이란 제목의 메일을 보낸 이는 토머스 콘로이 예일대 홍보실 부실장(Deputy Director of Public Affairs). 메일 수신자 명단엔 포함되지 않은 ‘뉴페이스’였다. 첨부파일은 뜻밖에도 한글로 된 PDF 문서였다. 질문별 응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 4개 문장으로 구성된 답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예일대학교 언론성명서-2009년 10월 13일, 동국대학교는 불필요한 소송을 걸었습니다. 교육과 연구에 혼혈(‘심혈’의 오기)을 기울여야 할 두 학교에 있어서 이 소송은 시간과 돈의 낭비일 뿐입니다. 동국대학교는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이 법정으로 넘어간다면 2011년이 되어서야 재판이 시작되며 예일대학교가 모든 소송사항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동국대의 손해배상금(5000만달러·약 582억원*) 산정 근거

■ 재학생(잠재 지원 학생 포함)의 부정적 인식·여론 형성
-2008학년도 입시지원율 감소
-합격생 중 미등록자(동국대를 택하지 않은 학생) 증가
-모교에 대한 재학생 만족률 감소

■ 교직원의 부정적 인식·여론 형성
-동국대 지원 교직원 및 보직 수락 교직원 수 감소
-사건 관련 교직원 및 교수진 보직해임

■ 평판 훼손으로 인한 재학생 채용기회 감소
-동국대 채용박람회 참석기업수 연간 감소

■ 정부지원금·기업·동문 후원금 감소
-2007년 동문·후원자 약정 기부액 210억원 → 수령 기부액 54억원
-정부지원금 160억원 이상 감소

■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미지정
-금전적 손실(연간 13억5000만원, 2008년 이후 산출기준)
-로스쿨 설립시 제공되는 정부지원금 손실(35억원 상당)
-로스쿨 설립시 예상되는 동문기부금 감소(2억6000만원 상당)
-로스쿨 기반 마련에 이미 지출된 비용 손실(208억원 상당)

■ 이후 명성회복을 위해 지출한 비용
-'신정아씨의 박사학위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잘못된 정보에 입각, 동국대를 향한 비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적 비용 지출
- 고객서비스 컨설팅업체 한국능률협회(KMAC) 우수고객서비스상 후보에서 실격

*2009년 10월 14일 환율 1달러=1164원 기준 산출

자료 : 동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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