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모(22)씨는 콘돔 114개(헤로인 590g)를 삼키고 대만에 도착해 콘돔을 꺼내다가 뱃속에서 2개(10g)가 터지는 바람에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본지 9월 24일자 보도

"마약을 비닐로 싸 실로 엮은 뒤 하나씩 삼킵니다. 가끔 비닐이 터져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은 사람도 있는데 이 계획의 핵심은 세관을 안 거친다는 거죠. 이들을 '마린보이'라 불렀습니다."

올 2월 개봉한 영화 '마린보이'의 한 장면이다. 전직 수영 국가대표가 억대 도박 빚을 갚으려 마약 운반책이 된다는 줄거리다. 영화에는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몸 안에 마약을 넣는 과정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신체 은닉’은 가장 비인간적인 마약 운반방법 중의 하나다. 그들은 목숨을 담보로 마약을 몸속에 숨긴다. 사진은 영화 ‘마린보이’의 한 장면.

"그다음으로 자주 이용한 게 항문입니다. 하루 동안 굶고 깨끗하게 관장한 뒤 창자에 꽉꽉 채우면 그 양이 엄청나대요." 시나리오를 직접 쓴 윤종석 감독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상상으로 꾸며낸 내용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십수 년 전부터 이런 '마린보이'는 존재했다. 1991년 4월 김포공항에서 나이지리아인(당시 30세)이 붙잡혔다. 태국~싱가포르를 거쳐 들어온 그는 휴대품이 없었지만 유독 눈이 심하게 충혈돼 있었다.

당시 태국은 주요 마약 수출국(Source country) 중 하나였다. 이인호 인천공항 세관 계장은 "정밀 검사실로 데려가 커피를 아무리 권해도 마시지 않아 이상했다"며 "알고 보니 배에 가득 찬 헤로인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의 배에는 비닐과 반창고로 포장된 헤로인 덩어리 71개(710g)가 가득했다. 운반 성공비로 700달러를 약속받은 상태였다. 말로만 듣던 '신체 은닉자'가 국내에서 처음 적발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이 '생체 실험'을 감행하는 이유는 적발된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김대근 마약조사과장은 "목구멍을 열고 들여다볼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에 이들은 세관 검사의 취약점을 악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루 평균 3만5000여명의 인천공항 여행객 중 2% 정도만이 세관 검사를 받는다. 그중 마약 소지 혐의자로 의심돼 정밀 검사를 받는 사람은 극소수다. 관세청에 따르면 2005년부터 지난달까지 이런 사례가 10건이나 된다.

세관원들은 이들을 '인간 컨테이너'라 부른다. 신체 은닉 방법은 가지가지다. 입을 통해 창자에 넣는 것(swallower)과 직장(直腸)이나 여성의 성기 속에 넣는 것(stuffer)이 많다. 세관 관계자는 "국내에는 없었지만 허벅지나 가슴 등 절개한 피부 밑에 마약을 넣은 사례도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대만인 3명이 인천공항에서 붙잡혔다. 이들은 포탄 모양의 헤로인 덩어리(70g)를 자기 직장 속에 넣어오다 적발됐다. 3∼5㎝ 길이로 제작한 덩어리를 각자의 직장 길이에 맞춰 한 사람당 5∼6개씩 넣었다.

이들이 들여온 헤로인은 시가 36억원어치로 4만명이 동시에 투여할 수 있는 양이었다. 이들은 헤로인을 랩과 라텍스 골무, 콘돔을 이용해 10겹 이상으로 쌌다. 체내에서 새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이들 일당의 소지품에서는 "사이즈가 너무 크다" "크기를 좀 줄여달라"는 고충 섞인 메모가 발견되기도 했다.

2003년 콘돔과 비닐랩으로 포장한 코카인 덩어리 115개(900g)를 삼켜 미국 LA에서 국내로 들어오던 한 페루인이 기내에서 쇼크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검 결과 3개의 코카인 덩어리가 위산에 녹아 급성 중독된 상태였다.

'풍선'이라고 불리는 마약 덩어리를 체내에 숨겨 오는 운반책들은 보통 이물감 때문에 피부가 창백하다. 기내식은 물론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다. 이들의 부자연스러운 거동은 세관 직원들에게 좋은 표적이 된다.

여성 운반책은 성기 속에 넣는 것을 선호한다. 지난 8월 콘돔으로 싼 메스암페타민 45g을 체내에 넣고 중국에서 들어오던 한국인 여성(54)도 그런 경우다. 창자나 직장과 달리 공항 검색을 통과한 후 마약을 빼냈다가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 다시 체내에 삽입하기가 수월하다는 것이다.

김대근 과장은 "브래지어나 팬티 속에 들여 와도 인권침해 때문에 함부로 수색할 수 없는데 몸속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으냐"고 했다. 결국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운반책들을 설득한 뒤 병원으로 '인간 컨테이너'들을 데려가 마약을 꺼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약 판매상이 다른 직업을 찾지 않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