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S·더 타임스의 '세계대학평가'가 발표된 8일, 세계의 대학가(街)에선 한국 대학들의 약진이 적지 않은 화제를 불렀다.
영국의 가디언지(紙)는 영국의 20개 명문대 모임인 '러셀 그룹'의 웬디 피아트 사무총장이 "한국 대학들이 학교에 대한 엄청난 투자를 통해 영국 대학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한 발언을 소개했다. 싱가포르 국립대 앙 체 탄 부총장은 "많은 투자를 한 한국 대학들이 교육개혁의 성과를 이루어가고 있다"고 했고, 영국 주간지 더 타임스 하이어 에듀케이션은 "세계대학평가 상위권 순위에서 미국 대학들이 지난해에 비해 줄어든 이유는 한국·일본 등 아시아대학들의 선전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대학은 '졸업생'이라는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이다. 이번 '세계대학평가'를 보면 한국 대학들은 교수 연구실적과 교육여건, 즉 '제품'을 생산하는 능력은 상당히 우수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평가하는 한국 대학의 졸업생 평판은 여전히 낮아 점수를 까먹었다. 즉 한국 대학이 생산하는 '제품'의 가치는 글로벌 인재시장에서 고객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며, 이는 글로벌 기업들에 제품의 가치를 인식시키는 '마케팅'에서 실패했음을 뜻한다.
실제로 대학의 연구력을 보여주는 교수당 논문 인용 수에서 포스텍(포항공대)은 세계 23위, 카이스트 95위로 세계적 수준이었다. 교원당 학생 수도 국내 대학은 세계 유명대학에 뒤지지 않았고, 같은 학문 분야 동료 교수들이 평가하는 학계(學界) 평가에서도 서울대 세계 25위, 카이스트 76위, 연세대 101위, 고려대 110위 등으로 선전했다.
하지만 국내 대학들은 졸업생 평판도와 국제화의 두 평가지표에선 고전을 면치 못했으며, 국내 상위 대학들은 두 지표에서 세계 200개 대학 평균에 못 미쳤다. 국내 대학 중 순위 1위인 서울대가 졸업생 평판도는 세계 153위, 국제화 지표인 외국인 교원비율은 157위에 불과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A교수는 "상위권 대학들의 연구성과는 글로벌 수준에 다가가고 있지만, 졸업생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들이 학문적 성과와 교육 수준을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 대학들도 영어가 되든 안 되든 국제 학술대회에서 열심히 발표하는 중국 대학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번 세계대학평가 졸업생 평판도 조사에서는 전 세계 글로벌 기업의 인사담당자 3281명이 참여했다. 한국 대학 졸업생들은 그동안 글로벌 기업에 취업한 학생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다.
지난 5월에 발표된 조선일보·QS '아시아 대학평가'에서도 국내 대학들은 졸업생 평판도에서 아시아 대학 20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영어 사용의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수한 연구수준과 교육여건에서 공부하는 한국 대학 학생들이 그만큼의 '제품 가치'를 글로벌 취업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사립대 B교수는 "외국에서 온 석학들은 한국 대학의 연구 수준뿐 아니라 학생들의 뛰어난 실력에 놀라워한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실제로 졸업생을 데려다 쓰는 '소비자'인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대학 졸업생 평가에 인색한 것이다. '세계대학평가'는 또 국내 대학들은 그동안 영어강의를 늘리고 외국교수를 초빙하는 등 국제화에 많은 공을 들여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외국인 교원 비율에서 서울대·카이스트·포스텍은 각각 29점·47점·50점을 받았다. 세계 상위 200위 안에 든 대학들의 평균 점수가 60.5점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 대학들의 외국인 교원비율은 아직도 글로벌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얘기다. 외국인학생 비율은 더 심각하다. 글로벌 순위 200위권 대학들의 평균점수가 61점인 데 비해, 서울대·카이스트·포스텍은 각각 33점·31점·19점에 그쳤다.
실제로 서울대의 외국인 학생회장을 지낸 터키 출신 카사르 야우즈 셀림(24·경제학과 3년)씨는 얼마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대학들은 유학생을 유치해 놓고 도리어 한국을 미워하게 만든다"며 한국 대학들의 국제화 마인드 부족을 지적했다.
홍콩과기대(세계대학평가 35위·아시아대학평가 4위) 김장교 교수는 "대학의 국제화는 단순히 외국교수를 초청해 숫자를 늘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인종과 국적을 떠나 외국인이 자연스럽게 연구·교육하는 분위기를 한국 대학들이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