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books.chosun.com/novel/lmy/popup.html','se','toolbar=no,location=no,directories=no,status=no,menubar=no,scrollbars=no,resizable=no,copyhistory=no,width=1100,height=710,top=0');"><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tn_view.gif" border="0" align="absmiddle"><

"이제 다 왔소. 저기 저 모퉁이만 돌면 하별리(下別里)요."

한군데 눈 덮인 모퉁이를 돌면서 수레를 몰던 노인이 들고 있던 채찍채로 끝없이 펼쳐진 벌판 한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깐 나름의 상념에 젖어 넋을 놓고 있던 안중근이 놀라 깨어나며 물었다.

"어르신, 저는 연추(煙秋)로 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하별리는…."

"아, 몰랐던가. 연추는 좌우 30리로 넓게 펼쳐진 지역이라 우리는 사람 사는 마을을 상하(上下) 둘로 나누어 부른다오. 곧 상연추와 하연추인데, 우리끼리는 상별리와 하별리로 부르기도 하지. 하별리는 바로 하연추요. 로씨야 말로는 니즈니예 얀치헤라고도 하고…. 연추의 마을 가운데 가장 조선인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오."

"아,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멋쩍어진 안중근이 그렇게 받자 노인이 문득 안중근을 지그시 살피는 눈길로 물었다.

"훈춘 경신향에서 오는 길이라기에 여기 나와 사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로군. 어디서 왔소?"

마차에 태워줄 때부터 별로 말수가 없는 노인이었다. 안중근이 청나라와 러시아 국경을 넘어설 무렵 흩뿌리기 시작한 눈발 때문에 은근히 마음이 급해져 있을 때 부른 듯이 나타나 근채(根菜)와 곡물을 반쯤 실은 마차 한 모퉁이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눈 속에 국경을 넘는 속사정은커녕 통성명조차 제대로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노인의 물음을 받고 보니 무언가 자신이 소홀했던 것 같은 느낌에 안중근이 사죄하듯 받았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입니다. 지난 여정이 구구하여 진작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노인은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받았다.

일러스트=김지혁

"그럼 연추에서는 누굴 찾아가는 길이시오?"

"이범윤 대장을 찾아뵈려 합니다."

"간도에서 무슨 벼슬살이를 하다가 건너왔다는 그 양반 말이오?"

"예, 간도관리사를 하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포대(私砲隊) 500명을 이끌고 이리로 망명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분은 하연추에 계시지 않소. 그분 부하들이 연 땅은 여기서 다시 한참을 가야 하오. 이게 첫길이라면 길잡이를 구해 가도 두어 시간은 걸릴 것이오. 거기다가 찾아간다고 해서 그분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러는 사이 작은 숲 모퉁이를 돌아서자 저만치 큰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북간도에서 흔히 보는 한인(韓人) 정착촌을 상상했으나 홀연 평지에 솟듯 나타난 하연추는 전혀 달랐다. 마을 가운데 제법 규모를 갖춰 지은 동방정교(東方正敎) 성당이 서 있고 그 둘레에도 몇 군데 볼만한 러시아식 건물들이 서 있었다. 마을의 크기도 한눈에 수백 호가 넘어 보여 국경지대의 정착촌이라기보다는 작은 도시 같은 느낌을 주었다.

먼빛으로 보는 가옥의 형태들도 상상과는 너무 달라 안중근에게 더욱 낯설게 비쳤다. 한인들만 모여 사는 마을이 아니라 러시아 사람들도 함께 섞여 사는 듯 집들은 태반이 러시아 농가 형태였다. 한인 거주지로 짐작되는 곳에서도 북간도에서 본 그런 초가 오두막집들은 거의 눈에 뜨이지 않았다.

"왜 만날 수가 없습니까?"

안중근이 그렇게 반문하자 노인이 다시 한번 살피는 눈길이 되어 한동안 안중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간도에 있을 때는 청나라 사람들과 싸웠고, 노일전쟁 때는 일본군과 싸운 데다, 조선 임금의 소환까지 거역하고 이리로 망명 왔으니, 이래저래 그분의 목을 노리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구먼. 거기다가 -우리끼리니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집 인근에 의병부대 훈련장소가 있어 아무나 오는 게 반갑지도 않고…. 듣기로 그분을 만나려면 미리 연통을 놓고도 저쪽에서 부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소."

그래놓고 잠깐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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