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보이에서 메이저 챔피언까지.

17일(한국시각) 월드넘버원 타이거 우즈를 누르고 PGA챔피언십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 챔피언에 오른 양용은(37ㆍ테일러메이드).

'야생마' 양용은은 도전의 화신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스스로를 다그치고, 벽에 부딪혔을 때는 돌아가기보다는 벽을 뛰어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키워 끝내 그것을 넘어서는 선수다. 10년전 '코리안 탱크' 최경주(39)가 미국 무대 진출을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PGA에서 큰 성공을 거둔 최경주는 3년전 국내대회에서 "당시 '안된다'는 말만 들었는데 후배들에게 당당하게 문을 두드릴 것을 권한다"고 했다.

20대의 젊은 선수들도 선뜻 나서기 힘든 길을 양용은은 30대 중반의 나이에 과감하게 노크했다.

양용은의 삶 자체가 모험의 연속이었다. 1972년 제주에서 태어난 양용은은 고교를 졸업한 뒤 친구 소개로 골프 연습장에서 볼을 줍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번은 친구의 부탁으로 나이트클럽에서 며칠 동안 웨이터로 쟁반을 들기도 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에게 골프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집안의 반대로 건설회사를 다니기도 했지만 몇 번 쳐본 골프채의 황홀한 감을 잊지 못했다.

1991년 보충역으로 제대한 뒤 제주 오라골프장에서 일을 했다. 연습장에서 프로선수들의 샷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양용은의 아버지 양한준씨는 "골프는 부자 운동이다. 볼을 치면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며 같이 농사를 지을 것을 몇 번이나 권유했다. 하지만 양용은은 비닐하우스 파이프를 잘라 연습 스윙을 하며 결코 꿈을 잊지 않았다.

1996년 늦깎이로 프로 테스트에 합격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양용은은 "1997년 신인왕이 됐지만 상금은 고작 1200만원이었다. 당시 일반 회사원의 연봉도 안됐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최고 선수의 꿈을 키웠던 양용은은 2002년 SBS 최강전에서 우승한뒤 2004년 일본 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2006년 11월 유럽투어 HSBC챔피언십 우승은 그의 행로를 바꿨다. 당시 타이거 우즈는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노리며 중국까지 원정을 온 상태였다. 자신감을 얻은 양용은은 2007년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하지만 초청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PGA투어 9개 대회에서 성적은 안 좋았다. 마스터스 공동 30위가 최고였다.

2007년 퀄리파잉스쿨(시드확보 예선)을 통과해 2008년 미국에서 뛰었지만 역시 부진했다. 지난해 말 양용은은 재차 지옥같은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다. 일본이나 한국 무대에서 뛰면 손쉽게 우승권에 들 수 있는 실력이었지만 더 큰 꿈이 있어 포기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양용은은 미국 코스와 잔디 적응, 기술 샷 연마 등 자기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결국 턱걸이로 조건부 시드를 따낸 양용은은 지난 3월 혼다클래식에서 풀시드가 없어 대기신분으로 출전했다가 덜컥 우승을 거뒀다. 우승보다 2011년까지 풀시드를 확보한 것이 더 기뻤다. 양용은은 이후 뷰익오픈 5위, 캐나다 오픈 8위 등 자주 톱10에 이름을 올리며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결국 모두의 꿈인 PGA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거머쥐게 됐다. 양용은은 꿈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