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와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볼 수 있듯 판타지 소설은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전 세계적인 판타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동화와 청소년문학 분야에서도 판타지 장르가 차지하는 비중은 놀랄 만큼 증가했다. 이 같은 판타지 신드롬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판타지는 '무엇이든 가능한' 마법의 세계로 현실을 대체하고 손쉬운 대리만족을 제공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판타지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일상을 지배하는 현실 법칙을 벗어나 전혀 다른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인간에겐 현실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황당하고 신비한 세계, 비(非)이성과 비합리의 세계에 대한 깊은 갈망이 있다. 판타지는 이런 우리의 욕망을 채워주는 대표적인 서사 장르다. 판타지의 '또 다른 세계'에서 우리는 괴물·요정·유령 등의 이질적인 존재들과 조우하고, 세속적 시간에서 탈출하여 의미감으로 충만한 신화적 시간을 경험한다.
하지만 바로 그런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현실세계를 '다른 거울'로 비춰 보이는 판타지도 많이 있다.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865)에서 흰 토끼를 따라 지하세계로 들어간 앨리스의 신기한 모험담은 방향이 정해진 정상적인 세계를 의심하고 뒤흔드는 힘을 지닌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은 문명의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전망 뒤에 가려진 공포와 불안을 끄집어내고, 스티븐슨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1896)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교양이 억압한 욕망의 또 다른 얼굴과 대면하게 한다. 판타지 장르의 대명사인 톨킨의 《반지의 제왕》(1955) 또한 가상의 '중간계'에서 벌어지는 모험들을 통해 인간의 지배욕과 권력의 속성을 성찰하게 해준다.
판타지는 유연하고 복합적인 장르로서, 특히 재현(再現)의 리얼리티를 의심하는 시대의 서사적 탐색에 폭넓은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최근에는 SF·호러·미스터리 같은 인접 장르들뿐 아니라 문학사의 고전들과 활발히 교섭하며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판타지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바이런·셸리·키츠 등의 시인들을 사로잡는 '뮤즈(Muse)-뱀파이어'의 환상을 펼쳐보인 팀 파워스의 《라미아가 보고 있다》(1990)가 그 좋은 예다. 댄 시먼즈의 《일리움》(2003)도 호머의 《일리아드》에 근거한 신들과 영웅들의 전쟁 이야기 속에 오늘날의 사회적 쟁점들과 문화적 상황들을 풍부하게 녹여내고 있다.
판타지 소설을 저급한 펄프 픽션으로 여기는 국내의 경향과 달리, 세계적으로 판타지 장르의 문학성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환상문학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브람 스토커상, 영국환상문학상 등 판타지 장르에 수여되는 문학상들도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우리 경우에는 판타지 소설이 주로 대여점을 통해 유통되면서 틀에 박힌 영웅 활극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와, 수준 높은 판타지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들과 역량 있는 판타지 작가들이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 마련된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이 판타지 출판 시장의 왜곡된 구조를 개선하고, 깊이 있는 성찰과 참신한 문제의식을 지닌 판타지 소설들의 창작과 유통에 기여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