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촬영한 배경 그림을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
WSJ는 8일(현지시간) W섹션 9면에 '왜 독재자는 키치(졸작 Kitsch)를 사랑할까'라는 기사에서 클린턴 일행이 함께 촬영한 배경의 그림과 이라크 바그다드의 '승리의 손' 조각상, 스탈린 시대에 만들어진 모스크바의 '노동자와 콜호츠 여성' 조각상 등을 비교했다.
저널은 클린턴 일행 뒤에 있는 배경사진은 무섭게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위로 새들이 낮게 날고 있는 장면을 설명하면서 “이것은 평범한 그림이 아니라 목적이 있는, 정치적 선전”이라고 지적했다. 즉 “독재정권이 그들의 지도자를 미화하기 위해 예술을 전체주의적 키치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널은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김정일 정권이 '자연의 힘'이라는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가볍게 날개짓하는 새들은 자연의 낙원을 연상시키며 정권이 그러한 낙원을 일굴 것이라는 사실, 맹렬하게 몰아치는 파도는 모든 적들을 무찌를 준비가 돼 있는 국가와 위대한 지도자를 상징하는 메타포"라고 분석했다. 키치는 1870년대 독일 남부 예술가들 사이에서 '물건을 속여 팔거나 강매한다'는 뜻으로 쓰이다가 저속한 미술품, 일상적인 예술, 대중 패션으로 의미가 확대됐고 현재는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예술을 선전도구로 삼는 전체주의적 키치는 국가를 칭송하고 독재자에 대한 개인숭배를 조장한다. 저널은 “망치와 호미, 솔을 각각 들고 있는 손 모양의 노동당창건 기념조각물은 높이가 150 피트가 넘는다”며 “이 조각물은 다락방에서 일하며 굶주린 예술가가 만든게 아니라 평양 만수대 작업실에서 조립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북한이 통제하는 예술’의 저자인 제인 포탈 보스턴박물관 아태담당 공동회장은 “만수대는 3000명의 일꾼들이 모여 있는 예술작품회사로 놀랄만한 속도로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한달에 평균 두 개의 대작들을 만들 수 있다”고 전했다.
전체주의적 키치는 1934년 구 소련에서 소비에트작가노조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주창하면서 시작됐다. 처음 10년간은 유럽의 모더니즘과 함께 카즈미르 말레비치와 블라디미르 타틀린, 알렉산더 로드첸코와 같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훌륭한 작품들이 탄생됐다.
그러나 스탈린 치하에서 러시아 공산당은 예술을 혁명의 도구로 삼았다. 보편적이며 쉽게 이해되고 교훈적인 목적으로 활용됐고 모더니즘은 브루조아의 사조로 배격됐다. 예술가들은 스탈린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작업에 동원됐다.
대표적인 작품인 베라 무키나의 1937년 작 ‘노동자와 콜호츠 여성’상은 망치와 낫을 하늘 높이 쳐든 80피트 높이의 조각상이다. 이후 10년간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독재자들을 위한 필수요소가 되었다. 나치가 그랬고 마오쩌뚱이 그랬으며, 사담 후세인이 그랬다.
후세인이 이란과의 8년 전쟁이 끝나고 세운 ‘승리의 손’은 대로 양 편에서 두 개의 거대한 손이 각각 칼을 들고 무지개 모양으로 엇갈린 조각물이다. 이 손 조각은 후세인의 실제 손을 본뜬 것이었다.
제인 포탈 회장은 “북한식 사회주의 리얼리즘 버전인 ‘킴 컬트(Kim Cult)’는 그들을 신으로 간주하는 ‘마오 컬트’와 ‘스탈린 컬트’에 기초하는 전형적인 개인숭배”라고 지적했다.
포탈 회장은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여성들이다. 소련과 중국에서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짊어지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북한의 여성들은 일하는 모습이 아니라 화장을 했거나 드레스 차림”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는 신유교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전통적으로 남북한은 남성우월주의 사회이기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널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예술가는 근근히 먹고 살지만, 전체주의 국가 예술가는 매일 같은 작업을 반복해도 생활에 지장은 없다. 하지만 독재자가 몰락하는 순간 그들은 실업자가 될 뿐 아니라 가치 없는 이데올로기의 상징으로 전락했음을 깨닫게 된다”고 지적했다.
소련 공산주의 몰락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속했던 많은 예술가들은 과거 자신들이 그린 레닌의 초상화를 팔거나 종교적 대상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의 한 미술비평가는 “내가 아는 한 화가는 과거 매일같이 레닌의 얼굴을 그려댔다. 그는 지금 매일 예수의 초상화만 그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저널은 최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휴가 때 상반신을 벗고 말에 올라탄 장면과 강에서 접영을 하는 두 장의 사진이 러시아 총리실 홍보자료로 나온 것과 관련, "푸틴을 수퍼맨처럼 느껴지게 하는 전체주의적 키치의 느낌이 풍긴다"고 언급했다.
말에 올라탄 사진은 과거 나치의 히틀러가 갑옷 입은 기사의 차림으로 말에 올라탄 사진이 연상되고 강에서 수영하는 장면 또한 마오쩌뚱이 1966년 양쯔강에서 보통사람과 똑같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 수영하는 사진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신문은 “푸틴이 독재자는 아니지만 전체주의 독재자들을 배출한 나라에서 성장했고 KGB 출신이라는 경력, 두 차례 대통령을 지내고 지금은 수상으로 실권을 휘두르는 현실이 불가피하게 전체주의적 키치의 효과를 주고 있다”고 비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