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루이스(미국)가 96년7월30일 애틀랜타 주경기장에서 벌어진 올림픽 육상 멀리뛰기 결승 2차시기에서 힘차게 뛰어오르고 있다. 루이스는 이날 8미터50을 뛰어 금메달을 차지했다.

1984년 8월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주경기장 ‘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 열린 멀리뛰기 경기 결승. 앳된 얼굴의 23살 흑인선수가 다리를 무릎까지 들어올리며 겅충겅충 뛰었다.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지만 눈은 구름판만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출발선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른 그는 폭풍같이 질주한 후 구름판을 밟고 허공을 갈랐다.

다리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난 그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8m54㎝. 경기장을 가득 메운 10만 관중은 한 흑인선수를 향해 모두 일어나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4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2위보다 무려 30cm나 멀리 뛴 압도적인 우승. 25년 전 오늘, 육상의 전설이 시작됐다.

◆ 48년 만의 육상 4개 종목 우승

전설의 주인공은 칼 루이스. 4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 8개, 세계기록을 7번 경신했다. 그는 1983년 헬싱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0m, 400m 계주, 멀리뛰기에서 우승해 3관왕을 차지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1984년 LA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부터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육상 4관왕을 차지했던 흑인 육상영웅 제시 오웬스의 후계자로 관심을 모았다. 그는 사람들의 예상대로 100m와 200m, 400m계주,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4개 종목 모두 2위와의 격차가 컸다. 그는 '육상황제' 였다.

◆ 잠실벌 ‘세기의 대결’에 묻힌 2연패

독보적인 정상의 자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는 1986년부터 2년 동안 100m에서 LA올림픽 동메달리스트였던 벤 존슨에게 다섯 번이나 연달아 졌다. 운동능력이 가장 중요한 단거리 종목에서 ‘본좌’의 기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1988년 서울올림픽 육상 경기의 초점은 ‘새로운 육상 영웅이 탄생하느냐’에 쏠려 있었다.

1988년 9월 24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육상 100m ‘세기의 대결’. 벤 존슨은 바람을 가르며 제일 먼저 결승선에 도착했다. 이전 세계신기록보다 0.15초나 빠른 9.79.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동시에 황제 칼 루이스는 쓸쓸히 2인자의 자리로 물러났다.

루이스는 다음 날 열린 멀리뛰기 결승에서 우승을 하며 올림픽 2연패를 조용히 달성했다. 이튿날 존슨이 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루이스의 100 1인자 복귀가 가장 큰 뉴스였다. ‘멀리뛰기’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더욱 멀어졌다.

하지만 칼 루이스가 꾸준히 정상급의 실력을 유지한 것은 ‘멀리뛰기’였다. 그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는 100m, 200m 국내 선발전에서 연달아 탈락해 트랙에 설 기회도 얻을 수 없었다. 30줄에 들어선 그는 단거리 선수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었다. 남은 건 ‘멀리뛰기’ 뿐이었다. 결국 경쟁자 마이크 파월을 3㎝ 차이로 꺾고 3번째 올림픽 우승을 거뒀다.

◆ 육상선수로는 환갑인 35살에 금메달, 비결은 채식주의!

35살, 육상선수로는 환갑의 나이. 칼 루이스는 멀리뛰기 미국 대표로 다시 올림픽에 출전했다. 모두들 그를 한 물 간 선수로 평가했다. 하지만 칼 루이스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1996년 7월 30일, 애틀랜타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결승전이 열렸다. 루이스는 자신의 최고 기록에서 20여㎝ 모자란 8m 50㎝을 기록했다. 우승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마이크 파월이 경기 도중 다리 부상을 당하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연패였다. 원반던지기의 알 오터에 이은 사상 두 번째 위업이었다.

그는 “운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육상선수로서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특히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으로 바꿨던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칼 루이스는 1997년 36세의 나이로 공식 은퇴했다. 그는 계속 선수로 남아 5연패까지 도전하려 했으나 동료 남자 선수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스캔들이 터지면서 선수생활을 그만둬야 했다. 만약 그가 계속 현역으로 뛰었다면 전인미답의 올림픽 5연패가 가능했을까? 루이스는 현재 액션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세워 육상 꿈나무들을 후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