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별세한 작곡가 김동진(金東振) 선생은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12월 임진강을 건너 월남했다. 평양음악대학 교수로 평양교향악단의 전신(前身)인 중앙교향악단과 합창단을 창단하며 지휘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공산 치하에 염증을 느꼈다.

그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 헌병의 검문을 받았다. 아무런 신분증이 없었지만 자신이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곡 〈가고파〉의 작곡가라고 소개하자 헌병은 아무 말 없이 놓아주었다. 삶과 죽음이 말 한마디에 갈리는 치열한 전시(戰時)에도 '국민 가곡'의 힘은 그만큼 컸다.

1913년 조부와 부친 모두 목사였던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난 김동진 선생은 어릴 적 혼자 노력으로 오르간을 쳤고, 그 모습을 본 부친이 11세 때 바이올린을 사줬다. 그는 숭실중 5학년 때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로 시작하는 가곡 〈봄이 오면〉을 작곡했다. 그의 첫 작품인 이 노래는 당시에도 널리 불려서 그가 숭실전문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유명 인사였다. 숭실중 재학 시절 그는 김동환·주요한 등의 시집을 늘 지니고 다니며 애독했고, 이 독서는 평생 아름다운 가곡을 작곡하는 원동력이 됐다.

김동진 선생이 〈가고파〉를 작곡한 것은 1933년 약관 20세 때였다. 양주동의 강의를 통해 이은상의 동명(同名) 시를 알게 된 그는 곧바로 곡을 붙였다. 이 무렵 벌써 가곡뿐 아니라 관현악도 쓰기 시작했으며 일본에 유학해서는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귀국 직후 1938년 제1회 조선일보 신인음악회에선 자작곡인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직접 연주해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남한으로 온 김 선생은 6·25전쟁이 끝난 뒤 서라벌예대 교수와 경희대 음대 교수로 후진을 양성했다. 특히 1969년 경희대 개교 20주년 기념으로 작곡한 교성곡 가운데 '오 내 사랑 목련화야'로 시작하는 〈목련화〉는 따로 가곡으로 널리 불리며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영화음악부터 군가까지 폭넓은 분야에 족적을 남겼고 1952년 군가 표창상, 1966년 청룡영화제 영화음악상, 1973년 국민훈장 모란장, 19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00년 대한민국 은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아들 신영(사업)·신원(경희대 교수)씨와 딸 신화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