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스포츠카 업체인 포르쉐와 유럽 최대의 자동차 업체인 폴크스바겐을 모두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던 두 남자의 야망 대결이 결국 한쪽의 완승(完勝)으로 끝났다. 승자는 포르쉐 창업주의 외손자인 페르디난드 피에히(Piech·72), 패자는 포르쉐에 직원으로 입사한 뒤 17년간 최고경영자(CEO)로 군림한 벤델린 비데킹(Wiedeking·57)이다.
폴크스바겐과 포르쉐는 23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폴크스바겐이 포르쉐의 지분 49.9%를 인수한 뒤 자회사로 합병하는 계획을 승인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폴크스바겐은 이미 아우디·벤틀리·람보르기니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포르쉐까지 합병함으로써 일본 도요타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동차 업체로 자리를 굳힐 전망이다.
원래는 포르쉐가 먼저 자신보다 덩치가 16배 큰 폴크스바겐을 인수하려했다. 포르쉐의 CEO 비데킹은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폴크스바겐의 지분을 71%까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막판에 자금난에 빠졌다. 그는 중동 국부펀드를 끌어들이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하자 결국 23일 사임했다.
포르쉐라는 회사는 합병됐지만 포르쉐 가문은 사실상 이번 합병의 승자다. 포르쉐 가문은 새로 출범하는 통합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소유한 최대 주주가 된다. 경영권도 포르쉐 가문의 일원이자 현재 폴크스바겐의 감독이사회 회장인 피에히가 행사할 전망이다. 그는 벌써 자신의 심복인 마이클 마흐트(Macht) 포르쉐 생산담당 이사를 비데킹의 후임 CEO 자리에 앉혔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24일 보도했다.
이번 합병으로 피에히는 평생의 야망을 이루게 됐다. 그는 젊은 시절 포르쉐의 엔지니어로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지만, 외할아버지의 회사를 물려받는 데는 실패했다. 외할아버지가 포르쉐의 지분을 아들·딸·친손자·외손자 등 후손 10명에게 10%씩 균등하게 나눠줬기 때문이다.
이런 소유 구조는 포르쉐의 내분으로 이어졌다. 결국 포르쉐 가문은 1972년 가족 회의를 열어 가족들의 경영 참여를 금지시켰다.
피에히는 자신의 꿈이 좌절되자 더 큰 야망을 품었다. 외할아버지가 1930년대에 개발한 '비틀(Beetle·딱정벌레 모양의 독일 국민차)'을 모태로 생겨난 독일 국영 자동차 회사인 폴크스바겐의 주인이 되려 한 것이다. 그는 포르쉐에서 퇴사한 뒤 폴크스바겐의 자회사인 아우디의 자동차 개발 담당 직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면서 아우디의 회장, 모회사인 폴크스바겐의 회장까지 역임했다.
한편 포르쉐 가문이 경영에서 손을 뗀 포르쉐는 매출 감소와 자금난으로 한 때 파산 위기에 처했다. 이 위기에서 포르쉐를 구해낸 인물이 비데킹이다. 자신의 첫 직장인 포르쉐에서 1993년 CEO가 된 그는 뛰어난 경영 감각으로 적자 기업이었던 포르쉐를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고수익을 내는 초우량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그는 이 여세를 몰아 폴크스바겐을 인수하려 시도했다.
피에히는 '주인 없는' 포르쉐에서 '주인 행세를 하는' 비데킹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사사건건 방해했다. 비데킹의 뜻대로 포르쉐가 폴크스바겐을 인수했다면, 포르쉐 가문의 일원인 피에히는 1972년 결의에 따라 경영에 참여할 수 없고, 이 자동차 제국의 주인은 사실상 비데킹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결국 피에히가 승리했다. FT는 "피에히는 세계 2위의 자동차 업체에 만족하지 않을 인물"이라며 "그의 야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