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간의 이·이 연대론이 불거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존중하는 세력끼리 힘을 합친다는, 이른바 '가치(價値)연대'이자 여권에 절실한 충청권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상이다. 이번에는 과거와는 달리 상당한 수준으로 진도가 나가 있다는 얘기가 많다. 청와대는 그 연장선상에서 심대평 선진당 대표를 새 국무총리로 기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연대론에 부정적이었던 이회창 총재는 9일 조건부이긴 하지만 전향적인 입장으로 변화한 듯한 말을 했다.

이 총재는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심 대표 등 선진당 인사의 입각에 대해 "정책 목표나 정치 상황에서 (여권과 선진당이) 연대·공조한다고 하면, 그런 틀 위에서 (선진당 사람이) 총리고 장관이고 하는 것은 좋다"며 "하지만 그런 것 없이 한두 사람 빼가는 식으로 하면 별로 유쾌하지 못하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충청 총리론에 대해 "누가 그런 장난질을 치느냐"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진전된 발언이다.

이 총재가 이날 연대의 조건으로 내세운 '공조의 틀'에 대해 측근들은 "정책 공조를 통해 좌파 쪽으로 다음 정권이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한 버팀목이 되려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현 정권과 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가치연대론'은 지난달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이념·지역갈등, 정쟁(政爭) 등의 치유 방안으로 언급한 '근원적 처방'과 연결될 수 있다는 해석이 많다. 실제로 그 무렵 차기 총리 후보군에 포함시킬 '비(非) 영남 정치인'을 물색해 달라는 요청이 청와대 쪽에서 한나라당으로 전달됐고, 상황을 종합할 때 충청권 인사의 총리 발탁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최근 이 대통령 측근이 이회창 총재를 만났다"며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면 더 진전된 이야기가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의 한 측근도 "공식 라인은 아니지만 이 대통령이 평소에 자문하는 원로로부터 '이 총재와 대통령이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타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이 심 대표를 기용하고 선진당과도 협력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된 얘기다. 대선 당시에는 심 대표의 국민중심당과 통합 직전까지 논의가 진행됐었다. 또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조각 작업에 참여했던 여권 핵심인사는 "실무진에서 1순위로 올렸던 초대 총리 후보가 심 대표였다"고 했다.

그런 필요성을 느끼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대통령은 지금도 충청권 문제로 많이 고민하고 있다. 충청권 민심과 같이 가야 정권도 안정되고 정권 재창출도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최소한 주류 내부에서는 그런 연대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했다.

여권 고위관계자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충청권을 고려한 '심대평 총리론'은 "여전히 유효한 카드"라고 했다.

여권 주류 입장에서는 이 총재와 심 대표를 중심으로 한 충청권 연대론은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가 매력적인 카드다. 정권 재창출 구도에서 이 총재를 통해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견제·경쟁 체제를 만들 수 있다.

또 미디어법 등 국회에 계류된 쟁점 법안들을 '공조 통과'의 모양새로 처리할 수도 있게 된다. 정국 운영면에서도 충청권과 보수 진영의 '집토끼' 여론을 등에 업을 수 있는 카드다. 여권으로선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도 충청권의 지지는 필수적이다.

여권 주류 입장에서는 이처럼 매력적인 카드지만 문제는 이 총재와 선진당 내부 반대 그룹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느냐다. 아직까지도 이 총재는 "언제든지 (여권이) 총리를 (선진당에서) 빼올 수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충청권 총리설이 도는 것 같아 불쾌하다"면서 청와대의 진정성을 100% 믿지는 못하고 있다. 과거 열린우리당 출신들도 섞여있는 선진당이 일사불란하게 이 총재를 쫓아갈지도 미지수다. 일부 선진당 의원들은 "우리도 정치인으로서 걸어온 길이 있는데 한나라당과 공조할 경우에는 탈당할 수도 있다"고 하고 있다. 또 충청권 여론이 이같은 연대론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줄지도 알 수 없다.

한나라당 내부 반발 역시 변수다. 당장 '박근혜 견제용'이라고 경계하는 친박계가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아직까지 실무적인 준비 지시는 없었다"며 "대통령 귀국 후 여러가지 정치적 상황을 봐가면서 최종 방향이 잡힐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