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각 대학은 “어려운 가정 경제를 반영한다”며 일제히 등록금 동결을 선언했다. 지난 5월 12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2009년 대학등록금 정보공시 현황에 따르면 국·공립대 평균 등록금은 지난해와 동일한 416만9000원이었다. 사립대의 경우 지난해보다 0.5%포인트(40만원) 인상된 742만원이었다(2009년 4월 기준). 2006년 6.7%, 2007년 6.5%, 2008년 6.7% 등 최근 3년간 등록금 인상률이 연속 6%대였던 것에 비하면 0.5%의 인상률은 눈에 띄게 낮은 수치다.
대학뿐 아니라 정부의 학자금 지원사업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대표적 예가 한국장학재단이다.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학생이 없도록 국가 차원에서 장학·학자금 지원 사업을 펼치겠다는 설립취지 아래 지난 5월 7일 출범했다. 재단 측은 “추후 장기저리로 학자금 대출을 해주고 국가장학기금을 설치하는 한편, 장학금 무상지급 대상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대학과 정부 측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을 둘러싼 대학가의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려면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까지 부업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로 대학을 ‘모골탑(母骨塔)’에 비유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소 팔아 자녀 학비를 대던 시절의 대학이 ‘우골탑(牛骨搭)’으로 불리던 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여전히 새 학기가 되면 캠퍼스 곳곳에선 등록금 투쟁을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학생회 등 일부 학생들은 삭발과 단식 등을 감행하기도 한다.
뭐니뭐니해도 등록금 부담을 덜려는 학생이 기댈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방안은 교내 장학금을 공략하는 것이다. 실제로 각 대학은 다양한 명칭의 장학금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신입생 모집기간엔 장학금이 각 대학의 홍보수단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생은 “종류만 많았지 평범한 학생이 노릴 만한 장학금은 별로 없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대학별 교내 장학금의 종류와 지급실태를 조사했다.
‘4년 전액’ 등 파격 혜택 내세워 모집, 실제 수혜자는 적어
‘최초 수석’ 규정… 1등 미등록 땐 차석자 수석 인정 안해
지난 2004년 정시모집으로 K대학에 입학한 김모(25)씨는 정시모집자 30명 중 유일하게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외형상 그는 단과대 수석이었다. 이 대학의 경우 단과대 수석이 되면 학기당 18학점 이상을 평점 3.5점(4.5 만점)으로 이수했을 때 8학기 등록금 전액을 감면 받는다. 그러나 김씨가 받은 장학금은 첫 학기 입학금과 등록금 70% 면제가 전부였다. ‘진짜’ 수석이 아니란 게 그 이유였다. 당초 수석이었던 학생이 이 학교 등록을 포기하고 상위권 대학에 등록하는 바람에 다음 순위였던 그가 수석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 김씨는 “어쨌든 결과적으로 내가 1등이니까 전액 장학금도 당연히 내 몫일 거라고 생각했다”며 “담당 부서에 관련 내용을 문의했지만 규정상 장학금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만 되풀이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입학장학금은 입학성적만으로 대학 4년 등록금 전액을 면제 받을 수 있어 ‘장학금의 꽃’으로 불린다. 입학우수장학금(서울대), 안암장학금(고려대), 독수리장학금(연세대), 퇴계장학금(성균관대), 최우수입학장학금(이화여대)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이 입학장학금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파격적 혜택을 내세우며 각 대학이 광고하는 입학장학금의 수혜자는 기대치보다 훨씬 적다. 여러 곳에 원서를 접수하고 합격한 대학 중 마음에 드는 곳에 골라 입학하는 현행 대입 시스템의 특성 때문이다. 최상위권 대학 몇 곳을 제외하면 최초 수석 합격생이 유지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상위권 대학을 찾아가며 장학금 혜택을 포기하는 학생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이하 ‘대교협’) 정책연구부 김병주 연구소장은 “보통 단과대의 수석 합격생은 커트라인이 더 높은 다른 대학에도 동시 합격할 가능성이 크다”며 “대학 간판을 중시하는 요즘 사회에서 수석입학에 따른 전액 장학금 수혜보다 좋은 대학 진학이 더 매력적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초 책정한 입학장학금의 실제 지급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 주요 대학 관련 부서에 문의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공식적 통계자료가 없다” “알아도 규정상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K대학 입학처 관계자는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입학장학금을 포기하고 다른 대학에 등록하는 학생이 학교마다 어느 정도 있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이 느끼는 불만과 달리 “입학장학금 운용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도 있다. S대학 학생처 관계자는 “입학장학금 지급 대상을 ‘최초 수석합격자’가 아닌 ‘최종 수석합격자’로 확대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대학 입장에서 입학장학금은 우수 학생을 유치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H대학 기획부 관계자는 “장학금용으로 배정된 예산보다 실제 수혜액이 적더라도 다음 학기 장학금 지급으로 이월되므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염려는 없다”고 밝혔다.
대교협 김병주 소장은 “전체 예산 중 장학금을 얼마나 책정하고 사용했는지 등의 재정건전성은 대학평가의 주요 지표 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학이 사용되지 않은 장학금을 전용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내 장학금의 가장 흔한 형태는 성적장학금이다.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성적 우수자에게 지급되는 만큼 이견이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K대학은 학사지원부가 단과대별로 성적장학금 예산을 책정하면 해당 단과대가 최적 분배 비율을 자율적으로 정해 지급한다. 예를 들어 예산이 500만원이라면 △1등에게 등록금의 70%, 2등과 3등에게 등록금의 50%를 각각 지급하는 경우(총 지급액 490만원)와 △1등에게 등록금의 100%, 2등과 3등에게 30%를 각각 지급하는 경우(총 지급액 480만원)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때 단과대 입장에선 좀 더 많은 금액을 수령할 수 있는 첫 번째 안을 채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렇게 되면 해당 단과대에서 1등을 하더라도 등록금 전액을 면제 받을 수 없게 된다.
H대학 공대 출신인 직장인 박모(26)씨는 대학 1학년 때 19학점을 수강, 전과목 만점으로 학과 수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학부 재학생 300여명 중에선 2등에 머물렀다. 똑같이 전과목 만점이면서 20학점을 수강한 학생이 다른 과에 있었기 때문이다. H대학 성적장학금의 지급단위는 학과가 아니라 학부였다. 당시 학부 2등에게 주어지는 장학금은 등록금의 70%. 박씨는 “한 학기 내내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학교의 장학금 지급 기준 때문에 단 한 학점 차이로 전액 장학금을 놓쳤다”고 말했다.
학부수석을 차지하고 전액 장학금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성적장학금에 대한 대학 규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S대학 성적우수장학금 지급기준에 따르면 1등은 등록금의 80%, 2등과 3등은 각각 등록금의 50%와 30%를 장학금으로 받는다. 이 학교 컴퓨터학부 김모(24)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처음부터 성적우수장학금을 노렸다. 결과도 좋아 학부 수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학부 1등이면 당연히 전액 장학금이겠지’란 생각에 학교 규정을 찾아보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그는 “다른 대학에선 대부분 학부 수석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기에 우리 학교도 그런 줄 알았다”고 말했다. S대 학생지원처 관계자는 “우리 학교는 예전부터 1등이라고 해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그나마도 몇 년 전까지 70%였던 지급 규모를 늘린 것”이라고 밝혔다.
한 대학에서도 장학금 액수는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단과대학 혹은 학과의 ‘파워’ 때문이다. A대학의 경우 단과대별 1인당 장학금 수혜액은 최저 52만원에서 최대 128만원으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해당 부서 관계자는 “역사가 오래된 학과는 선배들의 지원이 활발해 원래 지급액에 외부장학금이 더해진다”며 “학과별 장학금 유치 능력에 따라 지원규모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부분 종일 근무 요구해 휴학생에 밀리고 학업 어려워
모집공고 뜨면 순식간에 수천 건 조회… 하늘의 별 따기
근로장학금은 학과 사무실·도서관·행정부처 등 학내 기관에서 일하고 받는 돈을 말한다. 일종의 교내 아르바이트다. 근무지가 학교 안에 있어 이동에 걸리는 시간과 노력이 절약되고, 수업에 따라 근무일정을 조정할 수 있어 학생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 매 학기 학교 홈페이지에 근로장학생 모집공고가 뜨면 조회수가 순식간에 수천 회를 상회할 정도다. 시간당 급료는 학교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개 4000~6000원 선이다. 최저임금기준(4000원)을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일반 아르바이트보다 수입이 낫다. 무엇보다 근무지가 '학교'라는 믿을 수 있는 공간이란 점에서 안정적이다.
S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박모(23)씨는 지난 2월 학교 게시판에서 ‘입학관리팀 근로장학생을 모집합니다’란 공지를 보고 혹했다가 이내 실망했다. 학교 측이 내세운 첫 번째 자격요건이 ‘본교 휴학생일 것’이었기 때문이다. 해당 부서는 매주 월~금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근무할 학생을 모집했다. 수업을 들어야 하는 재학생은 근무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였다. 박씨는 “근로장학금의 취지가 대학생활을 안정적으로 하면서 학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아니냐”며 “휴학하고 한 학기를 꼬박 할애해 일해야 겨우 학비를 댈 수 있는 게 우리 학교의 근로장학금”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S대학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학교 3학년 김모(22)씨는 학기 초 교내 취업정보센터 근로장학생 모집에 응모했다. 학교로 들어오는 취업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진로상담 전문가와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에서다. 문제는 높은 경쟁률이었다. 학기당 모집인원이 2명에 불과했던 것. 김씨는 면접 선발과정에서 탈락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얼마 후 게시판에 올라온 ‘취업정보센터 상근 근로학생 모집 공고’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번엔 원서를 내보지도 못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할 수 있는 야간대학 재학생’이란 자격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일반 근로장학생 외에 상근 근로장학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상근 근로장학생은 대학 교직원과 똑같은 출퇴근시간을 적용 받기 때문에 실상 학업과 병행할 수 없게 돼 있다. Y대학 교무처에서 1년간 상근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던 장모(24)씨는 “이름만 근로장학생이지 하는 일은 일반 교직원과 다를 게 없다”며 “단순 업무보조 역할뿐 아니라 행사 준비나 일반 근로장학생 관리 등 책임이 수반되는 업무가 많아 학업과 병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