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전주시 삼천동 집에서 '리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 매 자살한 강희남(89) 목사의 영결식이 10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열렸다. 반미 친북단체와 언론은 그를 '90년대 통일운동을 이끈 재야 원로'로 떠받들고 있다. 최근 5년 간 그가 남긴 글과 인터뷰를 분석해봤다.

강씨는 1990년 결성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이었다. 범민련은 1997년 대법원에서 이적(利敵)단체 판결을 받았다.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고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보다 3년 전인 1994년 김일성 조문(弔問)을 기도하다 구속됐다.

그는 2004년 '저 불량배 부시를 생각한다'는 글에서 "북조선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정치 리념과 철학이 있다"고 썼다. 그게 '김일성 수령 영생주의'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 리념'이라는 것이다. 그는 북한 핵과 미사일을 "세계 최강 아메리카와 버티는 정신력의 상징"이라고 했다.

'나는 이제야 양키의 체제가 무엇이고 이북의 체제가 무엇인 것을 알았다'(2007년 9월 30일)는 글에서 그는 "이남에서는 도저히 민족의 정통성을 찾을 수가 없고 이북에서만 민족의 정통성이 있음으로 이북을 나의 조국으로 알고 믿는 바"라고 했다.

강씨는 2004년 7월 '탈북자 소감―하나의 역설'이라는 기고에서 "핵이 없으면 주권을 지킬 수 없다"며 "이북 내 조국이 핵을 더 많이 가질수록 양키들의 콧대를 꺾을 수 있다"고 했다. 2006년 10월 '이북 핵 앵무새 노릇 그만하자'에서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양키들이 창안한 밀림법"으로 규정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 '김정일 위원장님께 드리는 글'에서 "양키 제국주의자들의 핵 포기 후 평화협정 운운하는 말장난에 속아넘어가서는 안 된다"면서 "핵 포기는 바로 주권 포기와 맞먹는 일"이라고 했다. "이남에서 양키 앵무새들이 이북 핵 운운하고 있지만 핵의 전략성을 모르는 바보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 김 위원장께서는 80%의 승리를 거두었다…."

강씨는 우리 영토에 대해서도 북방한계선(NLL)을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날 양키군 측에서 국제법도 아랑곳 없이 제멋대로 그어놓은 것을 북공화국이 어떻게 인정하겠는가? 국제법적으로 12마일 선의 령해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가 아닌가?"(2008년 4월 17일, '이번 북공화국의 처사는 100% 타당하다')

그는 '목사'였지만 고통받는 북녘 동포들의 인권도 외면했다. 북한은 "나라의 주권이 유지되느냐, 망하느냐의" "인권 이상의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권문제는 보류하고 주권문제를 우선시하여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2006년 2월, '2006년, 통일의 대전환점을 만들어야')

독재(獨裁)도 찬양했다. "양키들의 동맹국이라는 이남의 정권과는 달리 굶어 죽어도 양키들 노예는 될 수 없다고 국운을 걸고 사력을 다해 싸우는 이북이 인권문제 같은 것을 돌아볼 여유가 어디 있는가? 불가불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재도 필요한 것 아닌가?… 이북의 인권문제를 말하기 전에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양키들의 대북 협박정책부터 버리라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정의의 사람으로 할 일이다."(2007년 1월 9일, '제국주의자들의 폭력에 맞서 싸우는 정의')

탈북자도 비난했다. 그는 "대부분의 탈북자는 범죄를 저지르고 탈주한 자"라며 "양키들이 이를 거짓으로 속이고 세계를 우롱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많은 통일운동 단체들이 양키 놈들에게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양키 추방운동을 않고 있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2006년 2월)

강씨는 2005년 5월 '양키추방공동대책위'라는 단체를 만들어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는 폭력 시위를 주도했다. "우리가 저 쇠뭉치 덩어리 하나 치우는 것을 그리 대단한 것으로 여겨서가 아니다. 맥아더는 리승만의 킹메이커가 아닌가? … 저 동상은 우리 조정 통치의 상이며 우리 례속의 표상이다."(2005년 9월, '왜 맥아더 동상 철거인가?)

그는 작년 촛불 시위에 나선 10대 학생들을 "역사가 숨쉬고 있는 증거"라며 치켜세웠다. "부모 세대는 이들의 정의로운 행동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촛불문화제에 함께 하는 학생들을 단속의 대상으로 보는 이명박 정부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70·80년대의 독재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2008년 6월 1일, 한겨레신문 인터뷰 중)

민주당은 그의 죽음을 두고 "목사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의 평화 공존과 통일의 중요성을 몸소 가르치신 것"이라며 "생전 당신께서 몸소 실천함으로 깨우치셨던 그 가르침대로 우리는 당신이 못다 이룬 뜻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좌파 언론은 북측 표기대로 '리명박 대통령'이라고 쓴 그의 유서를 '이명박'으로 고쳐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