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권력에 대한 표적수사'라는 논란 속에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큰 상처만 남기고,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이인규)는 지난달 31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잠시 중단했던 수사를 재개했지만 피의자들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4일 알려졌다.

뇌물 혹은 불법 정치자금 공여자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물론, 범죄 사실과 연관된 참고인들이 한꺼번에 입을 닫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불법자금이 주로 달러화를 포함한 현금으로 전달된 점 때문에 수사 초기부터 박 전 회장의 진술에 크게 의존해 왔다.

물론 박 전 회장의 일정 등을 꼼꼼히 기록한 여비서의 다이어리가 큰 몫을 했지만, 이를 근거로 추궁하는 검찰에게 돈을 주고 받은 사실을 말한 것은 박 전 회장이다.

여기에 운전기사, 돈 전달자 등 주변인물의 진술이 더해져 소환된 '피의자'가 혐의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충격을 받은 박 전 회장이 입을 닫았고, 참고인으로 불려온 사람들마저 진술을 꺼리면서 수사가 차질을 빚고 있다.

여기에 '살아있는 권력'으로 불렸던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임채진 검찰총장의 사직서가 수리돼, 수사팀의 의지마저 꺾인 상황이다.

대검찰청 조은석 대변인은 "참고인 등이 진술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어 수사가 장기화될 판"이라며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은 문성우 대검 차장의 총장 대행 체제로 일단 남은 수사를 최대한 신속하게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천 회장을 추가 조사한 뒤 사전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김태호 경남도지사와 부산고법의 A부장판사 등 박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조사를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검찰은 앞서 검찰에 소환됐던 박진·서갑원·최철국 의원과 박관용·김원기 전 국회의장,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 등을 일괄 사법처리하면서 수사를 종료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