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이 전해진 23일 청와대는 충격에 휩싸이면서 이 사건이 향후 미칠 파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사실을 보고받은 것은 사건 발생 40여분 뒤인 오전 7시20분쯤이었다. 김인종 청와대 경호처장은 봉하마을에 파견된 경호처 직원들로부터 이 사실을 보고받은 즉시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사저에서 가까운 김해 세영병원으로 이송 중이었다. 이 대통령은 김 처장의 보고에 충격을 감추지 못했고 "신속한 긴급 의료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한·체코, 한·EU 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앞서 청와대 경호처는 오전 7시를 전후해 노 전 대통령의 투신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호처가 이 사실을 가장 빨리 알게 된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퇴임 후 7년간 청와대 경호처가 경호 업무를 제공토록 돼 있고, 투신 현장에도 경호처 소속 경호원이 유일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오전 8시40분쯤 긴급 수석비서관회의를 소집했다. 이 대통령은 한·체코 정상회담에 들어가기 전인 9시15분쯤까지 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맹형규 정무수석, 정동기 민정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에게 신속한 대처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던 9시40분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보고받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공식 확인된 직후 곧바로 메모 형식으로 이 대통령에게 보고가 들어갔다"며 "한·체코 정상회담, 한·EU 정상회담 등 외교 일정은 상대국을 고려해서 예정대로 진행하지만 이날 오후 외부 일정은 모두 취소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한·EU 정상 오찬에 참석했으나 당초 예정됐던 건배사는 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로 잡혀 있던 이 대통령의 KBS 프로그램 출연 일정은 취소됐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공식 확인되자 청와대는 분주히 움직였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노 전 대통령 측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애도의 뜻을 표했고, 이날 오후 조문을 위해 맹 정무수석과 함께 경남 김해 봉하마을로 떠났다. 맹 수석은 "이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여러 차례 당부했다"고 했다.

주말을 맞아 쉬고 있던 청와대 직원들도 속속 출근했고, 일부 수석실은 개별적으로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서가 공개되기 전 일부 직원들은 내용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청와대는 낮 12시쯤 이동관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을 통해 "애석하고 비통한 일"이라며 애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한·EU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다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대통령은 한·EU 정상 오찬이 끝난 직후 다시 긴급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와 함께 향후 정국 대책 방안 등이 논의됐다.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가 가져올 정치·사회적 파장에 주목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당분간 이 대통령의 외부 일정을 줄이고 애도의 기간을 갖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따라 당초 24일 이 대통령 주재로 국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던 국가재정전략회의는 26일 국무회의 이후로 연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