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환씨가 논문에서 규정한 ‘욕설세대’의 최고참은 1983년생, 우리나라 나이로 27세다. 이 기준에 따르면 현재 초·중·고교생은 물론,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생까지 욕설세대의 범주에 포함된다. 욕설세대들은, 혹은 비(非)욕설세대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욕설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각기 다른 연령의 사람들로부터 욕설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들어봤다.

photo 조선일보 DB

우리 반엔 욕하는 애와 안 하는 애가 반반 정도 된다. 그렇지만 남들이 알 만한 욕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쓴다. 난 안 하는 쪽이기 때문에 애들에게도 욕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통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욕은 별 의미 없는 장난처럼 사용된다. 욕을 들었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는 애들도 별로 없다. 선생님이 계신 데서 욕을 해도 크게 혼나지 않는다. 가볍게 주의를 주시는 정도로 끝난다. 한번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부모님이 욕을 하시더라. 그런데 그 친구 역시 반에서 욕을 꽤나 잘 쓰기로 유명하다. 그 친구를 보면서 ‘욕하는 습관을 부모님께 물려 받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땐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욕을 쓴다. 욕을 욕으로 인식하지 않는다고 할까? 어젠 교내 체육대회가 있었는데 한 친구가 욕을 하다가 담임 선생님께 혼났다.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건 아닌데 어른들과 함께 있을 땐 욕을 잘 안 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말투가 자연스럽게 바뀌는 것 같다. 본격적으로 욕을 쓰기 시작한 건 중1 때부터다. TV나 영화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고 친구들에게 배웠다. 일상생활에서 늘 욕을 사용하기 때문에 욕하는 게 무슨 문제인가 싶다. 욕하는 습관을 고쳐야 한단 생각도 해본 적 없다. 군대 갔다오고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고쳐지지 않을까? 그렇지만 초등생들이 욕하는 걸 보면 ‘조그만 것들이 벌써부터…’ 하는 생각에 혀를 차게 된다.

평소 욕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어떤 말이 욕설로 쓰이는지 어느 정도 알지만 정확한 쓰임이나 의미는 잘 모르는 편이다. 주변에도 욕하는 친구가 별로 없다. 교사란 직업 영향도 큰 듯하다. 올해 5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반 학생들의 욕설 사용은 심각한 수준이다. 안 쓰는 애가 없을 정도다. 욕을 못 쓰게 하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요즘 애들은 욕을 통해 친분을 쌓고 우월함을 과시하려고 한다. 욕하는 애를 발견하면 아름다운 우리말을 뽑아서 쓰게 하는 등의 벌칙을 준다. 어떤 교사는 애들보다 더 심한 욕을 하며 ‘맞불작전’을 펴기도 한다. 학생들이 불쾌감을 느껴 욕설의 나쁜 점을 스스로 알도록 하자는 건데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다. 현재 학교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언어순화 프로그램은 특별한 게 없다. 교사가 알아서 교육하고 계도해야 한다.

평소엔 특별히 할 이유가 없어 욕을 하지 않는 편이다. 욕해봤자 내 입만 더러워지는데 내 손해 아닌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또래 수준으로 욕을 했던 것 같다. 나이 들며 자연스럽게 고쳐졌다. 욕하며 상대를 미워할수록 그 상처는 내게 돌아온단 걸 알게 됐다. 운전할 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온다. 신호도 없이 다른 차가 끼어들거나 하면 특히 그렇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놀란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 같다. 열 살짜리 아들과 여덟 살짜리 딸이 있는데 애들이 내 욕을 들을 때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도 주의를 주는 편이다. 한날은 아이가 집에 와선 ‘누가 ×××라고 하더라’며 욕을 하기에 아내와 내가 바로잡아줬다. 한번 욕하기 시작하면 더 많이 하게 되고 습관이 되면 고치기 힘들다고 얘기해주었다. 아직 어려 그런지 잘 타이르면 알아듣는다. 부모가 없는 곳에서 욕을 하는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른들 앞에선 조심한다.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아들 친구를 본 적이 있다. 모든 말이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더라. 참 안됐단 생각이 들었다.

엄한 가정에서 자라 욕을 절대 쓰지 않았다. 욕은 ‘당연히 쓰면 안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지금도 욕은 자신의 인격을 한 단계 낮추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가끔 ‘야이씨’ 정도의 말을 쓰긴 하는데 그조차도 부모가 되고 나선 조심하게 됐다. 올바른 자녀교육을 위해선 부모가 모범이 돼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초등 3년생 딸과 일곱 살짜리 아들이 있다. 하루는 딸아이가 어디서 배워왔는지 ‘개자식’이란 말을 쓰더라. 처음엔 욕이니까 쓰지 말라고 말로 타일렀다. 그런데 어느새 입에 붙었는지 명절에 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삼촌들을 가리켜 ‘개자식’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들녀석까지 멋모르고 따라하기 시작했다. 안되겠다 싶어 눈물 쏙 빠지게 혼을 낸 후 어디서 배웠냐고 했더니 반 친구들이 쓰는 걸 들었다고 했다. 딸의 언어습관에 대해 아내와 얘기하다 보면 욕을 쓰는 연령층이 갈수록 낮아지는 걸 느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미 욕설에 노출되는 것이다. 아직 제대로 된 언어체계조차 갖춰지지 않은 시기이므로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절엔 욕설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요즘 TV에 나오는 ‘제길’ ‘꺼져’ 같은 말도 우리 땐 욕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우리 때 욕은 어감부터 별로 강하지 않아 사회문제가 된 적도 없다. 젊은 시절 운전할 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버릇이 없어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욕을 안 하게 된 것 같다. 불필요하단 걸 알게 된 거지. 일하면서 학생들을 자주 보는데 입이 많이 거칠어졌더라. 침 뱉고 담배 피우고 가지가지 한다. 그런 학생을 보면 꾸짖기도 하는데 무성의하게 듣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밤에 아파트 놀이터에 모여 얘기하는 거 들어보면 가관도 아니다. ‘ㅈ나’란 말은 입에 달고 살더라. 남자애들이 모여 있으면 50대인 나도 근처를 지나가기 무서울 정도다. 욕하는 게 요즘 애들의 문화라고? 교육이 단단히 잘못됐다. 그걸 애초부터 ‘문화’로 규정한 기성세대도 문제다. 지금 욕하는 애들도 크면 분명히 후회할 거다. 내 자식이 욕하면 매로 다스렸다. 그렇지만 횟수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학교에서 바로잡아주겠지’ 하며 넘겼던 것 같다.


/ 성승우 인턴기자 remix1919@gmail.com 
  최다정 인턴기자 starzigi8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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