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지역의 동쪽 끝 도시 훈춘(琿春)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한적한 시골마을 미장춘(密江村)은 요즘 고속도로 건설이 한창이다. 투먼(圖們)에서 훈춘으로 이어지는 62.7㎞ 길이의 도로다. 마을 앞 개울 근처엔 수십m 높이의 고가 고속도로 기둥이 줄줄이 박혀 있다.

2003년 착공한 투먼~훈춘 고속도로는 지린(吉林)성 성도인 창춘(長春)과 훈춘을 잇는 길이 482㎞짜리 전체 고속도로의 한 구간이다. 이 구간 건설이 끝나는 내년 초면 중국 동북 중심부에서 두만강을 거쳐 동해로 나가는 물류 통로가 열린다.

고속도로 옆으로 러시아로 향하는 철로가 뻗어 있었다. 1990년대 초 건설된 이 철로는 국경을 넘어 러시아 카미쇼바야(Kameishovaya)로 이어진 뒤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연결된다. 훈춘시 당국은 "중국과 러시아 고위층이 부정기적으로 운행돼 온 이 철로를 올 8월 완전히 개통하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3國이 통하는 자리 동해로 나가는 두만강 하구의 접경 지대. 왼쪽이 러시아, 오른쪽이 북한으로 철교가 양국을 잇고 있다. 사진 앞쪽은 중국 영토이며, 멀리 지평선 쪽이 동해다.

두만강 개발계획이 구상 17년 만에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지역은 1992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국제적인 자유무역지대로 개발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관련 당사국들의 소극적 태도와 동북아 정세 악화로 발전이 지체됐다.

그러나 이제 중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낙후한 이 지역 개발을 서두르고 있고, 러시아도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를 앞두고 극동 지역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중국. 중국 정부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와 상무부·재정부·과기부 등 5개 부처로 구성된 두만강 개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작년 11월 '두만강구역합작개발계획' 초안을 내놓았다.

200쪽에 달하는 초안은 북한과 러시아의 항구를 빌려 동해로 나가는 출해권(出海權)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동북 지역에 한국과 일본, 홍콩 등지의 외국기업을 대거 유치한다는 전략이 핵심이다. 훈춘에서 동해까지 거리는 불과 20여㎞이지만,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 국경에 의해 직접 동해로 나가는 길이 막혀 있다. 2860억위안(약 54조원)을 들여 이 일대 인프라를 정비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두만강개발사무국의 김성문 주임은 "전문가 그룹이 발개위의 초안에 대한 막바지 검토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이르면 이달 중 최종안이 발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는 이미 인프라 건설 작업이 활발하다. 창춘~훈춘을 잇는 고속도로가 올 연말 준공될 예정이고, 같은 구간에 고속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항공 측량 작업도 이뤄지고 있다. 중국은 또 북한 나진항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훈춘~나진을 잇는 고속도로(68㎞)와 양국 국경을 잇는 다리를 중국측 비용 부담으로 새로 건설하겠다는 제안을 내놓고, 북측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대형 여객기가 들어올 수 있도록 기존의 옌지(延吉)공항 대신 신공항을 건설하는 계획도 확정됐다.

지역 행정체계의 개편 작업도 진행 중이었다. 조선족 거주지인 옌지와 룽징(龍井), 투먼을 인구 120만명 규모의 도시로 통합해 외부 인구가 유입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는 구상이었다.

러시아 역시 발 빠르게 움직인다.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APEC 회의에 대비해 지난해 300억달러 규모의 극동지역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또 북한과 협의를 거쳐 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핫산~나진 50㎞ 구간의 철로 보수공사에 착수했으며, 나진항 3호 부두 개발권도 따냈다.

지난 2월에는 연해주 두마(의회)의 고위 인사가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지린성을 방문해 양국 도로·철도망 개통을 논의했다. 중국과 러시아 간의 동시베리아 송유관도 이 지역을 거쳐 중국으로 들어간다. 윤승현 옌볜대 경제관리학원 교수는 "러시아는 넓은 연해주에 인구가 700만명에 불과해 극동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중국이 자본을 대고, 러시아가 항만을 제공하는 형태의 협력 관계가 두만강 일대 개발의 새로운 동력"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동해 항로 사업에 참여하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작년 하반기 러시아·중국과 러시아 자르비노항~일본 니가타항, 일본 니가타항~한국 속초항을 잇는 셔틀항로 운항에 합의했다. 이 항로는 작년 12월과 올 3월 말 두 차례 시험 운항을 거쳐 다음 달쯤 주 2회 정기 운항에 들어간다.

그러나 두만강 주변의 이러한 그물망 같은 인프라 건설 전망이 모두 밝은 것만은 아니다. 핵심축인 중국과 러시아가 개발을 주도하려고 경쟁하면서, 현재의 양국 협력 관계가 붕괴될 수도 있다. 대기업들은 여전히 북핵 문제로 불안한 동북아 지역에 투자하기를 망설인다. 중국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규모 투자를 할 만한 안정적인 정치 상황과 배후 시장이 필요하다"며 "좀 더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